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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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2020-03-14 (토)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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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저 사뭇 단순하고 영적인 것으로 사회적인 계층이나 연령 또는 심지어 성적(怯的)인 정체성과 아무 상관없다.”

미국에서 교육 받은 중국의 대표적인 성(怯) 과학자로 몇 년 전 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은퇴한 리인헤 교수의 말이다.

이것이 어디 성적인 정체성뿐이랴. 인종과 국적 또는 타율적으로 강요되는 기타의 강박관념에도 해당되는 게 아닐까. 미국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은 물론 한국도 이젠 다인종사회가 된 하나의 지구촌에서 시대착오적인 인종차별이나 애국애족심은 우리 모두 졸업할 때가 왔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유행어가 되었는데 힐링이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의미한다. 1991년 초반에 나온 마이클 잭슨의 노래(‘Heal the World’)는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만든 곡으로 ‘너와 나, 인류를 위해 세상을 치유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SBS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널리 사용되는 ‘카리스마 (charisma)’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카리스’는 축복이란 뜻이고, 치유능력이라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카리스마타’라고 불렀다 한다.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치유능력이란 의사 또는 어떤 성직자나 도사에게만 부여된 게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자연치유능력이 아니던가. 다만 잘못되고 혼동된 주체성을 바로 잡기만 하면 누구나 다 깨닫게 되는 축복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현재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살고 있든 간에, 어떤 인종과 성별과 연령의 어떤 직업인이든 간에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돌아가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자문자답할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 한국인의 예를 들어보자. 조국인 한반도에 살면서도 남과 북으로 갈려 내 고향은 북한인가 남한인가, 재일동포들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미주동포들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연변동포들은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사할린동포들은 러시아인인가 한국인인가, 혼돈을 극복하고, ‘우물안 개구리’의 ‘도토리 키재기’ 그만 하고, 큰 그림에 비춰 본 우리 모두의 진정한 정체성을 깨닫는 일이다.

지금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든 아니면 벗고 있든, 어떤 감투나 모자를 쓰고 있든, 어떤 머리 색깔과 스타일을 하고 있든, 이 모든 외형의 껍데기가 나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각기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광대무변의 무한한 우주 속 티끌보다 못한 아주 작은 별 지구에 잠시 살 뿐이다. 이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비록 우리 몸은 환영에 불과하지만 우리 마음과 혼은 우주처럼 무궁무진함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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