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지털 독재와 차이나게이트

2020-03-0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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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형 체제, 공산당 전체주의. 이런 유형의 권력이 가장 무서워하고 또 경계하는 것은 무엇일까. 군사 쿠데타라는 것이 한동안 정답으로 돼있었다.

1946년에서 2000년까지 기간 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독재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198개에 이른다. 이중 3분의 1 정도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반정부 시위로 무너진 케이스는 그 절반이 채 안 되는 16% 수준인 것으로 포린 어페어지는 밝히고 있다.

그러니 독재 권력은 민중의 동향보다는 독재자의 권좌를 떠받치고 있는 군부 엘리트 등 권력 주변 세력의 배신을 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정치현실은 달라진다. 군사쿠데타 등 권력내부에서의 배신을 독재 권력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국민저항, 대대적 반정부시위가 독재체제 유지에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하면 한 세대 전만 해도 군사독재의 대명사로 통했다. 툭하면 발생한 것이 군사 쿠데타였던 것. 이제는 구시대 유물이 됐다.

21세기 들어(2001년에서 2017년 기간) 무너진 독재권력 중 쿠데타에 따른 붕괴는 9%에 불과하다. 반면 반정부시위로 쫓겨난 독재 권력은 두 배 이상으로 집계됐다.

물론 한두 번의 반정부 시위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위가 시위를 불러오면서 결국 정권은 무너진다. 이 같이 계속되는 반정부시위로 무너진 독재정권은 모두 10개로 이 기간 중 붕괴된 전체 44개 독재정권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 무너진 44개 독재 체제 중 19개 정권은 선거를 통해 교체됐다. 이 19건 케이스도 그렇다. 먼저 대대적 시위가 발생했다. 그런 후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달라진 21세기의 정치현실. 이는 무엇이 불러온 현상인가.

‘처음에는 등사기가 있었다. 카세트가 있었고, 팩스(fax)가 있었다’-. 20세기 후반기 지구촌을 뒤흔든 ‘피플 파워’를 가능케 한 통신기기들의 나열이다. 그 통신기술 발달은 디지털시대를 맞아 소셜 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 불모지’ 아랍권에서도 대대적 시위가 촉발됐다. ‘아랍의 봄’이 그것이다.

‘Empire Strikes Back!’- 이후 상황은 반전된다. ‘디지털 독재자들‘의 출현과 함께 인터넷은 디스토피아건설의 인프라로 변모하고 있는 것. “인간의 권위가 빅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넘어가고, 권위주의형 정부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시민들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디지털 독재를 구축할 수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일찍이 내린 경고다.


그 경고가 현실화되면서 독재체제의 수명도 늘고 있다. 평균 10년 정도였던 독재체제의 수명은 21세기 정보혁명시대를 맞아 디지털 감시체제를 갖춘 후 평균 25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독재권력 유지에 필수불가결적 요소는 비밀경찰, 감시기구다. 민간은 물론 군도 감시대상이다. 그 감시임무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가. 그 고전적 해답은 과거 동독의 악명 높았던 비밀경찰 슈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슈타지는 1989년 무렵 정규요원 10만 명에 50~200여만의 정보원을 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동독 인구는 1,600여만으로 인구 66명당 1명이 비밀경찰이었던 셈. 슈타지는 말 그대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 비밀경찰조직 유지에는 엄청난 인적자원이 소요된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디지털화된 감시체계다. 그러니까 기존의 비밀경찰조직에게 하이텍 장비로 무장시키는 거다. 그게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다. 중국의 거리마다 장착된 감시카메라는 2억대가 넘는다. 인공지능(AI)을 동원해 얼굴과 생체인식, 빅 데이터 등을 결합해 14억 주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감시시스템은 수동적 감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사회 점수(social-credit system)’제도를 통해 개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사회관리’의 도구로도 사용된다. 또 정보차단과 역정보살포를 통한 대대적인 여론조작 기능도 수행한다. 그뿐이 아니다. 해외에도 손을 뻗어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마법의 비밀병기로도 활용한다.

연방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보고서는 그 실태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세계 곳곳의 중국 교포와 유학생들을 동원해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한다. 정치인과 관료, 학자들을 음성적 자금이나 이권으로 매수한다. 그리고 친중 정권을 세우기 위해 남의 나라 선거에 개입한다.” 이미 대만, 캄보디아, 뉴질랜드 선거에 손을 뻗친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푸틴 러시아보다 더 위험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 시진핑의 중국이 한국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었을까. 차이나게이트라고 했나. 중국이 우마오당(五毛黨)이라는 댓글부대를 동원해 한국의 국내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의혹 말이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합리적 의심으로 의혹을 벗어나 게이트로 번져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나라들이 디지털 독재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면서 민주주의 세계는 날로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해 나오고 있는 어두운 전망은 21세기는 자유민주주의 대 디지털 독재체제 간의 대투쟁의 시기가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편에…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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