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넌 킴!” 수화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종로구 계동에 소재한 외환은행 2층, 현대그룹 전담반에서 일하며 두툼한 외국환 거래법상의 지급인증 허가 신청서류를 검토하고 있을 때였다. 무역회사도 아닌 은행지점에 외국인이 전화를 걸어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89년 초까지 명동 중화민국 대사관에서 공군무관으로 근무하던 강용린 대령이었다. 호리호리한 6척 장신의 정예 전투조종사 출신으로 내가 대방동 공군본부 정보참모부 무관연락 장교로 근무하던 당시 절친하게 지냈던 분이다. 그는 대만 공군의 조종사 중에서도 엄선돼 한국으로 파견돼 온 인재였기에, 그가 3년 임기를 마치고 대만으로 복귀한다고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인자한 그의 성품으로 보나 우수 전투 조종사로서의 공군 내 입지로 보나 분명 공군 참모총장 정도는 할 것이라고 혼자만의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그가 귀국 후 얼마 안 돼 제대하고는 훌쩍 민항기 조종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다소 의아했다. 그와 함께 일할 때 표면적으로는 군사외교 관계로 만나는 입장이기에 서로 각별히 예의를 지켰지만 나는 그가 나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제대 후 신입행원 시절, 갓 돌 지난 큰 아이를 안고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한남동 남산 외인아파트의 사저로 여러 번 초대받아 제비집 요리, 샥스핀 같은 중국 진미를 고량주와 함께 대접받는 호사를 누리곤 했었다.
나보다 열세살 정도 위의 큰 형님뻘인 그는 대국의 풍모가 몸에 밴 아주 점잖은 신사였다. 타이베이 남쪽의 공업도시 신주의 고등학교에서 상업을 가르치다 휴직하고 한국으로 함께 온 그의 부인은 식사 후 중국의 명차라는 우롱차를 내어와 함께 마시며 담소하고는 했다. 그러면 국제학교의 숙제를 마친 12살 난 딸아이가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고, 9살 난 아들은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나와 우리를 위해 멋진 이중주를 해주었다.
당시 신혼으로 우이동 덕성여대 후원 쪽 쌍문동 꽃동네의 단칸방에 살던 나는 직장에서 인정받아 대리가 되면 해외지점에 발령받겠다는 것이 꿈이었다. 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느라 여념이 없던 우리는 모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주한 외교관 가정의 풍요로운 일상을 바라보면서 정말 그런 홈 스위트 홈이 따로 없다고 느끼며 부러워하곤 했었다.
나도 그를 매우 존경하며 잘 지냈는데, 그런 관계는 각자 군문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중화항공의 보잉기를 몰고 김포에 기착할 때마다 꼭 안부전화를 걸어왔고, 연말이 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내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 주곤 했다. 그때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 나는 부랴부랴 답장을 보내길 몇 해….
그러다 IMF 금융위기가 찾아온 1997년이었다. 내가 꼭 먼저 보내야지 하고는 카드를 써서는 명동 중앙우체국으로 가서 멋진 카드를 보내고는 모처럼 만족해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그 다음해에도 소식이 없자 광화문 도렴동으로 초라하게 옮긴 대만대표부를 찾아가 평소 알고 지내던 화교직원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리송한 대답을 짧게 하고는 더 이상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지금 여기 없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사고가 났나 하는 불길한 느낌을 갖고 살아오던 중 나는 뜻밖에도 20여년 지난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마지막 순간을 들었다. 이곳에서 친구가 된 대만 출신 엔지니어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1998년 인도네시아 발리 발 A300 에어버스를 몰고 타이베이 장개석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그는 안개 속에 활주로가 갑자기 나타나자 급히 고도를 높이던 중 꼬리부분이 활주로에 닿으면서 불꽃이 생기고 기체에 불이 붙은 채 인근 민가에 추락해 탑승객 203명 전원이 소사하였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당시 기내에는 IMF 연차총회에 참가했던 대만의 중앙은행 총재 등 정부의 고위각료들도 다수 탑승했다 사망해 대만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왔었다고 한다. 오, 세상에 … 이제 기억난다. 외신에 보도된 그때 그 사건… 나는 그의 천국행복을 빌며 잠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도저히 죽음이라는 음습한 사건과는 연결할래야 연결할 수 없는 경우를 나는 이외에도 두어 번 더 체험했지만,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사신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미아리 방면에서 들려오는 포성이 돈암동 주민들을 이만큼 불안하게 했을까? 도리가 없다. 백신이 개발된다는 6월까지 열심히 손 씻고 개인위생에 최선을 다하며 진인사 대천명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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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