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고 한다. 작은 손바닥 안에서 매일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을 만나는데, 그 중의 1%라도 머리가 아닌 가슴의 울림이 되면 좋겠다. 가끔은 오랫동안 머리로 알던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머리에서 가슴으로 ‘툭~’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 ‘아하! 순간(Aha! moment)’ 또는 통찰력(insight)이라 부른다.
누군가의 통찰들이 쌓여서 세상이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듯, 한 사람의 내적 성숙과 성장도 어느 날 문득 머리와 가슴에 길이 뚫리는 ‘아하! 순간’을 통해서 깊어짐을 경험한다.
작년 한국방문 중 30년 만에 대학동창들을 만나 그 동안의 생각과 경험들을 듣는데, 갑자기 한 생각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툭~’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신기하네. 사람마다 어쩜 이렇게 생각과 신념과 가치관이 다를까?’ 모두가 열변을 토하는데, 가만히 들으니 그 기준은 자신의 경험과 살면서 학습된 지식, 무엇보다도 세포마다 녹아있는 원가족의 가치관과 문화임을 발견했다. 머릿속에 오랫동안 저장된 미라 같은 진리가 갑자기 생령이 되어 온 가슴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검토하고 해독하여 자신만의 생각의 틀과 구조를 만드는데 이를 인지심리학에서 ‘도식’ 또는 스키마(schema)라고 부른다. 이것은 주변 인물들과의 상호작용과 일련의 상황을 겪으며 형성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경험한 세상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인지구조를 가지고 산다.
즉, 태어나면서 만나는 부모 형제 등 원가족의 문화를 당연하게 느끼며 성장하고, 살면서 겪는 독특한 경험들이 어우러지면서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소우주’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소우주는 나랑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 서 볼 수 있고, 한발 더 나아가 공감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작년에 ‘아하! 순간’을 경험한 이후, 나와 가치관이 너무 달라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너무 이상해’라고 빠르게 판단하고 마음을 닫는 대신 ‘저 사람은 나와 다른 부모와 환경과 관계를 경험하며 컸으니, 생각과 기준이 다를 수 있겠네’란 열린 생각을 심기 시작했다. 가끔 오해를 받거나 이해 받지 못할 때, 잠시 마음이 상하거나 섭섭하지만, 차차 ‘그 사람의 판단기준은 자신이니까, 그 잣대로 어떻게 나를 다 이해할 수 있겠어?’란 마음이 생기며 감정이 누그러지는 경험을 한다. 때로는 그 사람의 성장배경과 어린 시절 상처나 트라우마 등을 나중에 우연히 듣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그 입장이 이해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타인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일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무 의식이나 의심 없이, 내 머릿속에 만들어진 신념과 가치관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왔기에 ‘나는 남과 다르다’라는 열린 생각을 의식적으로 머리에 심지 않으면, 그의 기준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바운더리가 부족하고 개인의 분화가 낮을수록, 가족이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생각이 다른 배우자나 자녀를 통제하고 지적하고 바꾸려 한다.
가족과 갈등이 있는 많은 내담자들이 ‘저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공감이 안 되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해를 못해도 공감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감은 내 경험을 기준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소우주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경험과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단기준이 ‘나’일 때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은 더욱 어렵다. 안타깝게도 부족한 공감능력은 사회생활에 치명적이고, 인간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되며 특히 가족과의 친밀감 유지에 어려움을 준다. 그렇기에 자신이 공감능력이 부족함을 자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고 그 입장이 되어보는 ‘지속적인 훈련’과 ‘적극적인 노력’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
모니카 이 부부가족치료사 데이브레이크 대학원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