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은 1858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 스프링필드 주의사당 건물 앞에서 행한 연방상원 출마선언 연설을 통해 “절반은 노예, 절반은 자유인으로 갈라진 집은 서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가 이 연설을 통해 밝힌 ‘통합의 정신’은 링컨이 정치생활 내내 추구한 그의 정치적 이상과 목표가 됐다, 그리고 그를 가장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올려준 브랜드 파워가 됐다.
링컨은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닮고 싶어 하는, 벤치마킹 1순위 인물이다. 지난 2008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버락 오바마 역시 링컨을 캠페인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의 옛 주의회 건물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링컨과 같은 연고를 갖고 있는 점을 부각시켜 최대한 정서적인 이익을 얻으려 했다. 결국 당선됐으니 이런 계산과 연출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입으로만 통합을 떠드는 여느 정치인들과 달리 링컨의 메시지는 정치적 수사나 구두선에 머물지 않았다. 그가 국가분열의 위기 앞에서도 이 원칙을 놓지 않았고 이를 통해 국난을 극복해 나갔다. 그는 통합을 위해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인물을 포용하고 등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일화는 무수하다.
1860년 대선 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한 은행가가 링컨의 방에서 나오는 새먼 체이스를 붙잡고 이렇게 물었다. “입각하게 됐나요?” “방금 재무장관으로 임명 받았습니다.” “경력이나 능력으로 볼 때 당신이 더 나은데 왜 그의 밑에서 일하려 하는 겁니까?” “그래야 내가 돋보일 테니까요.”
며칠 후 은행가는 링컨을 만나 체이스에 대해 고자질을 했다. 그러자 링컨은 “그래요? 그런 사람 또 있나요?”라고 물으며 “전부 데려다 입각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쓰는데 오로지 능력만을 봤다. 국가를 경영하고 국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인재를 쓰는 일에 있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나 정치적 견해 차이를 개입시키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리더십이다.
링컨의 이런 면모는 그의 평전으로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자 도리스 굿윈의 ‘팀 오브 라이벌’에 세세히 나타나 있다. 라이벌은 ‘같은 냇물’이라는 뜻의 라틴어 ‘리발’에서 파생된 말이다. 강을 뜻하는 ‘리버’와 같은 어원의 말로 같은 강가에 살면서 같은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이웃을 뜻한다.
정치를 흔히 ‘적과 동지’의 싸움으로 규정하는데, 라이벌은 어원으로 보자면 적보다는 동지에 가까운 개념이다. 실제로도 라이벌은 죽고 죽이는 관계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통해 같이 성장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링컨이 등용한 많은 인물들이 실제로는 적이었을지 몰라도 링컨은 그들을 적이 아닌 건강한 라이벌로 여겼다. 그리고 함께 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2일은 링컨이 태어난 지 211년이 되는 날이다. 불의의 총격을 받고 세상을 뜬지 155년이 지났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아니, 오히려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만큼 지금의 미국사회가 통합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는 링컨을 ‘도덕주의자’ 혹은 ‘원칙주의자’라는 작은 틀 속에 가둬 놓거나, 자기계발서와 교회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역경극복의 입지전적 사례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링컨이 지닌 위대함의 본질은 원칙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라이벌들과도 함께 일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실용주의 면모에 있다. 링컨이야말로 진정한 ‘실용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조직이 제대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구성원들이 가진 역량과 헌신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다름의 불편함을 극복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손을 내밀 줄 아는 것, 이것이 ‘협치’이고 ‘포용의 리더십’이다. 국정연설장에서 대통령은 연방하원의장과 악수를 거부하고 하원의장은 대통령 연설문을 찢어버리는 볼썽사나운 막장정치 시대에 링컨의 존재가 한층 더 커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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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