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가주의 여러 예술기관들은 두개의 흥미로운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다. 하나는 LA오페라가 지난 주 개막한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유리디스 발견’(Eurydice Found) 페스티벌이고, 다른 하나는 LA필하모닉의 콘서트 시리즈와 연계한 ‘바이마르 변주곡’ 페스티벌이다.
각각 신화의 재해석, 정치와 예술이라는 흔치 않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두 페스티벌에는 라크마(LACMA)와 게티, UCLA, 노턴 사이먼 뮤지엄, 해머 뮤지엄, FIDM, 레드캣 등 수십개의 단체들이 합류해 3월까지 영화, 연극, 춤, 사진, 설치와 전시, 패션쇼, 세미나와 토론회 등 무려 60여개의 행사를 벌이고 있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이 2월1일 세계 초연된 오페라 ‘유리디스’다. 이 오페라는 29세의 작곡가 매튜 오코인(Matthew Aucoin)이 극작가 새라 룰(Sarah Ruhl)의 퓰리처상 수상 희곡을 대본으로 만든 것으로, 연출을 맡은 매리 지머만(Mary Zimmerman)까지 3인이 모두 ‘맥아더 천재상’을 받은 사람들이라 ‘천재들의 오페라’라 하여 큰 기대를 모았다.
작품은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한국에서는 에우리디체 혹은 에우리디케라고 발음하는데 이 오페라에서는 ‘유리디시~’라고 노래한다) 오르페우스는 아폴론과 뮤즈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가수로,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리라 연주는 사람과 짐승은 물론 나무와 바위까지 매혹시켰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유리디스와 결혼하지만 아내가 독사에 물려 죽자 비탄에 빠지고, 그녀를 다시 살려 데려오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아름다운 노래와 연주로 수많은 방해물을 잠재우고 저승신 하데스와 정령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한 그는 아내를 지상으로 이끌어오는데,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던 경고를 잊고 아내를 돌아보는 순간 그녀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며 영원히 죽어버리고 만다.
슬프고 극적인 이 스토리는 모든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시인 오르페우스는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단테, 보카치오, 릴케 같은 작가들에게 매혹적인 소재였고, 음악가로서의 그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를 비롯해 몬테베르디, 하이든, 오펜바흐 등 수많은 작곡가에게 창작의 소재였다.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바로 2년전 LA오페라와 조프리 발레가 함께 공연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작품은 언제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였다. 유리디스는 아예 목소리가 없고, 오르페우스의 가슴 아픈 사랑의 노래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초연된 새라 룰과 매튜 오코인의 오페라는 유리디스에게 처음으로 목소리를 찾아준 작품이다. 미투 시대에 재해석한 신화라고 할까, 두번 죽은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결혼식 날 뱀에 물려 죽음으로써 남편과 헤어져 하계로 내려가는 여자, 그곳에서 만나는 대상들과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남편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던 중 그의 실수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 인물의 스토리를 시적이고 동화적인 현대의 판타지로 풀어나간다. ‘유리디스 발견’ 페스티벌은 이를 둘러싼 다양한 예술의 모색을 전방위로 기획한 것이다.
한편 ‘바이마르 변주곡’ 페스티벌은 정치상황에서 예술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LA필의 계관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이 2주에 걸쳐 연주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독일음악’(Weimar Republic: Germany 1918-1933)과 함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내부와 외부에서는 패션과 사진전시, 음향설치, 레이저쇼, 합창행진, 영화 등의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 두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국가 명칭이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했던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과학과 예술분야는 지적 자유와 창의성이 만개하면서 크게 부흥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과학), 토마스 만, 카프카, 헤세, 브레히트(문학), 에곤 쉴레, 키르히너, 칸딘스키(미술), 쇤베르크와 힌데미스(음악)가 상호교류하면서 새 시대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미학적 실험과 모험은 나치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정지됐고, 시대를 역행하는 예술가만이 독일에서 살아남았던 것을 역사는 증언한다.
살로넨의 바이마르 축제는 100년전 파시즘과 함께 사라진 예술을 조명하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의 정치와 예술계에 전하는 메시지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보수 정권이 우세하면 예술의 자유는 취약해진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전형적인 예다.
지난 7일 공연에서 인터미션이 끝나갈 무렵 오케스트라 뒤쪽 좌석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기다란 배너를 펼쳤다. “트럼프/펜스#당장퇴출/파시즘거부”(Trump/Pence#outnow/Refusefascism.org)라고 쓴 배너였다. 안내원의 저지로 얼마 후 퇴장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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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