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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마유적 보러 터키 간다고?

2020-02-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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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안탈리아

▶ 안탈리아 지역 고대도시…아고라, 신전, 원형극장…주변에 널린 게 유적

고대 그리스·로마유적 보러 터키 간다고?

터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적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다. 안탈리아의 대학생들이 원형극장이 가장 잘 보존된 아스펜도스를 둘러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유적 보러 터키 간다고?

안탈리아 인근 페르게 유적.


고대 그리스·로마유적 보러 터키 간다고?

파묵칼레 위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



터키에서 그리스 로마의 숨결을 느낀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지만 웬만큼은 알려진 사실이다. 기원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 아래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고, 이후 로마제국의 속주를 거쳐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땅이 바로 터키다. 현재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하면 로마제국의 영토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니 터키가 고대 로마 유적을 가장 많이 보유한 땅이라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터키에서도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지중해의 휴양 도시 안탈리아 주변의 고대도시를 둘러보았다.

로마에서 콜로세움을 본 이들이라면 터키의 유적은 시시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현대식 경기장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2000년 전의 거대한 원형경기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충격은 일단 접어두는 것이 좋다.


터키의 유적에는 오랜 시간 자연재해와 지배세력이 교체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발굴도 더디고 복원도 미흡하지만 그래서 날 것 그대로의 유적을 접할 수 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서 생생하게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게 최대 매력이다.

페르게(Perge)는 안탈리아 중심부에서 30분 거리의 고대도시다. 입장권을 내고 유적지로 들어서는데 짐칸이 넓은 트랙터가 뒤따랐다.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유적 발굴팀의 장비였다. 발굴작업을 진행하는 한편으로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나마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로마의 문’ 외에는 설명을 들어야 어떤 건물이었는지 파악할 정도다. 냉탕과 온탕에 운동시설까지 갖췄다는 목욕탕이며, 아고라를 중심으로 시장이었을 자리를 둘러가며 남은 대리석 돌기둥, 대로가 끝나는 곳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돌무더기에 아무런 제재 없이 발을 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실감나지 않는다.

페르게에서 동으로 약 35km 떨어진 아스펜도스(Aspendos)는 고대로마 원형극장의 모습이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곳이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이 수직에 가깝게 반원 형태로 무대를 감싸고 있어서 공연의 집중도가 높은 구조다.

관광객들은 누구나 한번쯤 무대 앞에서 배우가 되고, 객석 제일 꼭대기에서 관객이 되어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음향시설을 확인해 본다. 첨단 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배우의 숨소리까지 전할 수 있는 구조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기원전 1000년에 그리스인이 건설했다는 이 고대도시는 바로 앞 에우리메돈(Eurymedon)강 수로로 지중해와 연결해 번성했는데, 원형극장을 제외한 아고라와 경기장 등은 거의 발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아스펜도스에서 다시 30분 떨어진 고대도시 시데(Side)는 보존상태는 떨어지지만 현재 도시와 분리되어 있지 않아 관광객들에게는 활력이 넘치는 유적지다. 차를 타고 시내 중심부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는 도로 양편으로 고대 유적이 말 그대로 널려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유적과 관람객 사이 간극이 없다.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대로마 최대의 원형극장 관람석에 오르면 허물어진 도시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은 지중해 바닷가의 아폴론 신전, 5개만 남은 하얀 대리석 기둥이 지중해의 햇살에 부서지는 코발트 빛 바다와 대비를 이뤄 시리도록 눈부시다.

또 다른 기둥의 받침돌이었을 대리석은 천연덕스럽게 여행객의 의자가 되고 기념사진을 찍는 단상으로도 이용된다. 신전 주변으로 기념품 가게를 비롯해 레스토랑과 카페도 즐비해 지중해의 낭만에 빠져들기에도 그만이다.

3만년 세월이 빚은 하얀 석회암 절벽과 물결모양 테라스, ‘목화의 성’을 뜻하는 파묵칼레(Pamukkale)는 한국인에게도 꽤 알려진 곳이다. 160m 절벽에 2,700m 길이의 하얀 성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32도의 온천수가 형성한 크고 작은 그릇마다 고인 물빛은 그대로 옅은 하늘이 되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관광객들은 정해진 이동로를 따라 정상부위에서 중턱까지 짧은 순백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훼손을 막기 위해 반드시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석회질 표면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감촉이 거칠고 미끄럽지 않다. 자료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테라스에 물이 가득 담긴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온천수가 충분하지 못해 요일에 따라 유량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 눈부심에 가려진 탓에 파묵칼레 위에 형성된 진짜 성(城),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현장 안내판에 그려진, 히에라폴리스의 황금기로 여겨지는 3세기 조감도에는 대형 아고라(광장)와 2개의 극장, 2개의 공중목욕탕, 신전과 체육관 사이로 주택이 빼곡하게 밀집해 있다. 너비 13.5m, 길이 1,500m의 대로가 남북을 관통하는 도시의 인구는 최대 10만명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원형극장만 그나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로를 따라 흩어진 유적만으로도 당시의 도시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여러 차례의 큰 지진에도 불구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데는 역시 기원전 2세기부터 온천휴양지로 각광받은 영향이 크다. 노천탕에는 부러진 대리석 기둥이 그대로 물속에 잠겨 있어 온몸으로 고대와 만나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히에라폴리스와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언덕에는 라오디키아(Laodikeia) 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규모로만 보면 가장 큰 고대도시로 추정되는데 현재 발굴된 것은 10%에 불과하고, 관광지로 개방된 것도 2년에 지나지 않는다.

고고학자가 아닌 이상 이 정도 보고 나면 ‘그 돌이 그 돌’이다. 어느 유적지나 한두 시간 발품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만, 3,000년의 간극을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해진 일정이 있다는 건 언제나 아쉬움이다. 1년에 300일은 맑다는 그 태양에 달궈진 대리석 잔해에 멍하니 앉아 두어 시간 머리를 말린다면, 스러졌던 돌무더기가 멋진 신전으로 되살아나고, 아고라의 시끌벅적함이 생생하게 들릴 듯한데….

터키의 고대유적 여행 일정은 한번에 여러 곳을 돌기보다 한곳에서 오래 보는 방식으로 짜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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