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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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특별 기금과 달란트 비유

2020-02-05 (수) 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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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정기 이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특별계좌 기금 50만6,991달러 중 45만달러를 4개 한인은행의 주식을 구입하는 안이 결정된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다. 상의 회장을 지냈던 한 상의 이사로, 통화의 요지는 특별계좌 기금의 투자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투자 정당성의 근거로 몇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중 성경의 달란트 비유를 언급했던 기억이 기자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달란트 비유는 잘 알려져 있듯이 어떤 주인이 자기 종들에게 5 달란트, 2 달란트, 1 달란트를 맡기고 떠난 뒤 돌아와 정산하면서 수익을 내어 칭찬받은 두 종들과는 달린 땅 속에 묻고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한 1 달란트 받은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 대략의 내용이다.

상의 이사는 달란트 비유처럼 특별계좌 기금 투자로 수익을 불리는 일이 상식적일 뿐 아니라 정당하다는 것을 성경에 빗대어 말하려 했던 것 같다.


사실 교회 내에서도 달란트 비유는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소위 번영 신학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아니면 각자 받은 은사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교회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다소 교회적 해석도 있지만 이 역시 자본주의식 투자 수익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달란트라는 화폐 단위는 당시 1세기를 기준으로 성인이 20~30년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손에 쥘 수 있는 거액이었다. 달란트라는 서민들에게 비현실적인 단위의 금액을 언급한 것은 처음부터 예수는 돈, 투자, 수익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달란트 비유의 의도는 1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굳이 달란트의 비유를 끌어다 쓴다면 상의가 특별계좌 기금의 투자 결정에 대해 안팎으로 비판받고 있는 것은 바로 기금의 주인인 한인 커뮤니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있다.

상의 특별계좌 기금은 상의의 재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찌 그 기금이 온전히 상의의 재산이라 할 수 있을까. 상의의 각종 행사에 스폰서로 참여한 한인 기업들의 생존 뿌리는 한인 커뮤니티에 있다.

한인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이 시기에 경제단체의 대표격인 상의가 한인 커뮤니티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일이 선행되었어야 옳다.

그런 점에서 위험부담을 두려워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1 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과 현재 상의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다.

<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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