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다룬 ‘부재의 기억’ 단편 다큐부문 후보 올라
▶ 이승준 감독 “담담히 기록… 다른 나라 관객도 공분”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 ‘부재의 기억’ 이승준(왼쪽) 감독과 감병석 제작자가 지난달 27일 후보자 오찬에 참석하기 앞서 오스카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작은 사진은 포스터.
어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진도 앞바다. 아침 햇살이 비끼는 망망대해가 보이고 물살을 가로지르는 배 안에서 어린 승객이 119 상황실에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다.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된 것 같아요”
벌써 6년이 되어가건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 상황은 바로 2014년 4월16일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현장이다. 결코 잊혀지지 않는 절박함과 허망함을 담담한 톤으로 기록한 이승준 감독의 다큐 영화 ‘부재의 기억’의 도입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영상과 통화기록을 시간대별로 나열하며 국가의 부재를 묻는다.
오는 9일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 5편 중 하나로 선정된 ‘부재의 기억’의 도입부다. 이승준 감독의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은 지난해 4월 뉴요커가 유튜브를 통해 무료 공개된 이후 250만 뷰를 넘어섰다. 29분 길이의 이 다큐 영화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2014년 한국에서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에 대한 간결하고, 처참하고, 공분하게 만드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부재의 기억’에는 다큐멘터리에 흔히 등장하는 나레이션이 없다. 배경 음악도 없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위에 시간만이 떠다닐 뿐이다. 당시 현장을 보여주는 자료 화면 만으로, 중간중간 삽입된 유가족,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잠수사와의 인터뷰에서 억눌러진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난 주 LA에서 열린 오스카 후보지명자 오찬에 감병석 프로듀서와 함께 참석한 이승준 감독은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2011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85분 길이 다큐 영화 ‘달팽이의 별’(Planet of Snail)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이승준 감독에게 세월호 다큐는 등 떠밀려 제작하게 된 한 편의 시 같은 영화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제작사 ‘필드 오브 비전’(Field of Visioin)이 촛불집회에 관심을 표하며 먼저 다큐 제작을 제안했다. 궁극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싶어하는 유가족들의 열망에 이 감독의 마음이 움직여 세상에 나온 다큐 영화다. 미국과의 공동제작인 만큼 다큐를 보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어 편집에만 1년 넘게 공을 들였다.
“세월호 사건은 다루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주변에 이 사건을 카메라에 담은 감독, 프로듀서들이 많아 자료 수집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그냥 제 스타일을 고수하며 세월호 사건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죠”
제작을 시작했던 2년여 전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반응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세월호 유가족과 고 김관홍 잠수사의 분노와 고통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유럽의 암스테르담과 뉴욕에서 다큐를 상영했는데 관객들의 분노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어요. 영국 상영회에서는 2017년 발생했던 ‘그렌펠타워 화재’가 언급되기도 했죠.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아무런 죄없는 국민이 받는 고통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승준 감독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보이지 않는 전쟁 - 인도 비하르 리포트’ ‘폐허 - 숨을 쉬다’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KBS 수요기획 ‘들꽃처럼, 두 여자 이야기’로 제20회 올해의 한국PD 대상을 수상했고, ‘신의 아이들’로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다. 2011년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이 IDFA에 초청되어 대상을 받은 데 이어 ‘부재의 기억’도 지난해 IDFA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고 뉴욕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DOC NYC)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은 웹사이트 https://fieldofvision.org/in-the-absence 혹은 유튜브에 접속해 ‘In the Absence’를 검색하면 다큐멘터리 전체를 볼 수 있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은 오는 8일 오후 1시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작가조합극장(Writers Guild Theater 135 S. Doheny Dr.)에서 열리는 오스카 단편 후보자 상영 ‘다큐데이 LA’에서 관람할 수 있다. 티켓 17달러. 온라인 구입 www.documentary.org/docuda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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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