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빈 메타

2020-01-21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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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24일 LA 필하모닉의 100주년 센테니얼 콘서트에 갔을 때였다. LA필의 주역인 세 지휘자-주빈 메타, 에사 페카 살로넨, 구스타보 두다멜이 총출연한 특별한 공연이었는데, 그때 무대로 나오는 주빈 메타의 모습을 보고 크게 낙담하고 말았다. 지팡이를 짚고도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와 간신히 포디엄에 오르더니 의자에 앉은 채로 지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다음날 메타가 지휘하는 말러 심포니 2번 연주회에 갈 예정이었으니 이거 참 낭패다 싶었다. 말러 2번 ‘부활’은 엄청난 에너지와 파워가 필요한 연주인데,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고령의 지휘자가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다음날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펄펄 살아서 약동하는 ‘부활’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투명한 공간을 힘차게 솟아오르며 퍼져나갔다. 빛나는 생명체가 거칠게 꿈틀대며 용트림을 하는 것 같았다. 많은 지휘자의 말러 2번을 들었지만 그런 연주는 처음이었고, 일렁이는 감동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83세의 주빈 메타는 2017년 어깨수술을 했고 2년간 암 치료를 받으면서 2018년 말에는 고관절수술까지 했다. 다시 포디엄에 서지 못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이날의 연주는 병상을 박차고 일어선 마에스트로의 ‘부활’을 알리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2020 새해벽두, 메타는 다시 한번 LA필을 뒤흔들었다. 화려한 1월1일 신년음악회에 이어 10~12일에는 바그너와 쇤베르크와 베베른, 결코 쉽지 않은 프로그램을 3일 연속 완벽하게 소화해낸 것이다. 아직도 지팡이를 짚고 나와 의자에 앉아서 지휘했지만 훨씬 더 회복된 모습이었고,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통제하며 그만의 파워풀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주빈 메타는 클래식의 변방, 인도 봄베이 출신이다. 아버지가 봄베이 교향악단의 지휘자였기 때문에 “요람에서부터 클래식 음악으로 세뇌되었다”고 말할 만큼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의과대학에 진학했던 그는 그러나 곧 음악에 대한 열정을 깨닫고 18세 때 빈으로 유학,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고 지휘 코스를 이수했다. 1958년 영국 리버풀 국제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신진 지휘자로서 주목받던 그에게 인생이 바뀐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62년, LA필하모닉에 발탁된 일이다.

처음에 그는 LA필의 차기 음악감독 게오르그 솔티에 의해 부지휘자로 뽑혔다. 그런데 임기 시작 전 솔티와 도로시 챈들러 회장 사이에 계약을 둘러싼 불화가 생겼고, 화가 난 솔티가 떠나버리자 챈들러가 그 자리를 메타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때 나이 25세, 하루아침에 부지휘자에서 음악감독으로 영전한 사건이다. 그 최연소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때부터 1978년까지 16년 동안 메타는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LA필하모닉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갔다. 그가 좋아하는 빈 필하모닉 사운드를 미국에서 재연하기 위해 106명의 단원 중 무려 86명(!)을 교체했고 유럽산 악기를 들여왔으며,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구입해 단원들에게 대여하는 등 절대적인 권한과 통제력을 휘둘렀다. 젊고 잘 생기고 멋진 무대매너와 카리스마를 가진 그는 ‘주비 베이비’라는 애칭과 함께 10대 소녀부터 노부인까지 열광하는 섹스 심벌, 청소년들의 아이돌로서 대중적으로도 그 인기가 대단했다.

메타의 부임 이후 LA필은 어느 때보다 많은 음반을 녹음했고 해외 순회연주가 늘어났으며 1965년 새 연주장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이 신축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메타는 ‘LA필 100년사’에서 그 시절에 대해 “지금처럼 지휘자들의 위상과 대우가 높지 않았고 신인이라 연봉도 형편없었지만 나는 항상 신나고 행복했다. 매일 공부하고 배우면서 음악을 만들었고 변화를 이루어갔다. 첫 4년 동안 단 한곡도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하지 않았을 만큼 더 많은 음악을 연주하고 들려주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렇게 젊음을 다 바쳐 LA필을 위해 헌신한 그는 1978년 뉴욕 필의 음악감독이 되어 떠났고 그곳서 13년간 재임했다. 이후 세계 수많은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지만 특별히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50년간 고락을 같이한 것이 유명하다. 1969년 인연을 맺어 81년 종신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후 상호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이어온 이들은 바로 지난해 50년의 여정을 마치는 고별연주회를 가져 화제가 됐었다. 이스라엘 음악계의 영웅인 메타는 인도에서는 국보이고, 클래식 본고장 유럽에서도 최고 거장의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래도 메타의 집이 있는 곳은 이곳 LA, 50년 넘게 살고 있는 브렌트우드 산꼭대기의 저택이다. 그리고 메타는 현재 LA필하모닉의 사운드를 만든 사람이다. 나중에 살로넨과 두다멜이 더 윤택하고 세련되게 조련했지만 근본은 메타 시절에 축조된 것이다. 풍요와 절제가 공존하고, 선이 굵고 대담한 그의 음악을 더 오래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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