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찾아서 ‘샘터’를 읽던 독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샘터’는 한때 어디서든 손만 뻗으면 거기 있던 잡지였다. 그 ‘샘터’가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사실상 폐간을 선언했다가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회생의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50만부 가까웠던 발행부수가 2만부 아래로 떨어지면서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간간이 보았던 ‘샘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맑았다’는 것이다. 따스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기억의 저 편에 있던 ‘샘터’가 불현듯 생각난 것은 이 잡지의 말과 요즘 세대의 말이 너무 극명하게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호평을 받고 있다지만 한국영화는 일반적으로 폭력 장면이 필요이상으로 잔혹하다. 미국영화보다 정도가 훨씬 심하다는 생각이다. 리얼리티를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영화에서 오가는 대화 역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몹시 상스럽고 저급하다. 말마다 ‘개’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예컨대 ‘무시’는 ‘개무시’라고 한다. 영화 속 세계와 현실사회가 서로 부추기면서 저급과 잔혹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소셜미디어의 언어폭력은 물론 특정 언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얼굴과 이름을 숨긴 채 뒤에서 쏟아내는 비겁한 익명의 한국어들은 때로 너무 악하고, 독하다. 이런 언어폭력 때문에 목숨을 끊은 연예인은 연예인이기에 세상에 알려졌을 뿐 소셜미디어의 폭력 피해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말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 치료도 쉽지 않다. 몸은 찢어지면 꿰매고, 부러졌으면 접합수술을 받으면 낫게 되지만 정신에 가해진 폭력은 치료방법부터 막막하다. 정신을 다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숨이 막히고, 온갖 자기 파괴적인 생각만이 지배하는 그 황폐한 세계. 언어 고문이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두어달 전 소셜미디어의 말 폭력으로 고통 받던 LA의 20대 여성이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50여만 달러의 배상을 판결 받은 일이 보도됐었다. 많은 사람이 언어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그는 힘들게 맞서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태미 나 씨. 윌셔 가의 한 법률회사에서 패러리걸로 일하고 있다고 밝힌 올해 25살의 이 여성은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성적 폭언으로 무차별 공격당했다.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문제의 포스팅들을 보니 ‘악하고 독해서 차라리 더러운 말’의 세계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2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녀는 괜히 화가 나고, 슬프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나는 등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고통을 겪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극심했다. 8차례 정도 심리상담도 받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그는 주위의 일부 시각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의 악평과 악플이 다반사인데 유별나게 법적으로 비화시키느냐는 말도 들었다. 진짜 별거 아닌데, 보통 있는 일인데, 나만 유난스러운가, 이런 생각이 겹치자 더 힘들었다.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소셜미디어에 오른 말 때문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 말들은 평생 없어지지도 않잖아요. 연예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더라구요.”
판결 후 재판을 담당했던 LA 수피리어코트 판사가 나 씨에게 했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이 판결로 네가 받았던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다. 요즘 소셜미디어가 어떤지 안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법정에 온 사례는 많지 않다. 네가 이렇게 이겼다고 여러 곳에 알려라. 나는 이렇게 이겼다라고.”
법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한다.
소송을 이끌었던 제이 홍 변호사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인사회만 해도 이런 일이 너무 많다. 번거롭고, 창피하다고 그냥 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적인 책임을 너무 모르고 사이버 상에서 함부로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운영자들은 판을 펴 놨으면 말이라는 흉기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더 철저하게 감시하고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누구도 언어폭력으로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파괴시킬 권리는 없다. 교통위반뿐 아니라 사이버 세계의 무분별한 폭력 단속을 위해서도 경광등을 번쩍이는 순찰이 더 강화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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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