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등짐을 진 수레 위의 소인

2020-01-15 (수) 조윤성 논설위원
크게 작게
지난 주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한 비자금 횡령과 삼성 뇌물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검찰이 23년을 구형했다. 1심 구형량이었던 20년보다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한 것이다. 국가지도자를 지낸 사람이 뇌물수수와 횡령 등 혐의로 법정에 선 모습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국민들이 이명박의 도덕적 취약성을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데는 이미 큰 부자인 그가 최소한 돈과 관련한 추문에는 연루되지 않으리란 믿음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믿음을 철저히 저버렸다.

이명박 퇴임 후 드러난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측근들의 독직과 부패, 국기문란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 혐의의 질이 너무 안 좋은데다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이어서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으며 추진된 대규모 국책사업 비리의 실상은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이 지적했듯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국민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과나 반성은 하지 않고 오랫동안 충성을 다한 참모들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있다. 전혀 지도자답지 못한, 비겁하고 옹졸한 행태다.


하지만 이명박의 현재 처지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가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저질렀던 위법과 탈법, 그리고 BBK를 둘러싼 의혹 등은 이명박이라는 인간의 기본을 드러내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이명박이 자신들을 부자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그를 선택했다.

사람의 속성은 쉬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자기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주역은 이런 성향을 ‘부승치구’(負乘致寇)라는 말로 설명한다. 풀이를 하면 “짐을 지고 수레를 타면 도둑이 오게 된다”는 뜻이다. 등에 짐을 진 소인은 일이 잘 풀려 호화로운 수레에 올라앉게 되어도 여전히 등에 있는 짐을 내려놓지 못하며, 그 집착은 결국 도둑을 불러들여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소인이 등에 진 짐은 이익을 탐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귀한 자리에 올랐으면 그 짐은 내려놓는 것이 당연함에도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에 올라서도 변함없이 등에 짐을 메는 재주를 부리다 도둑을 불러들인다. 군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천한 사람의 행실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재앙을 맞게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명박은 가장 높은 수레에 올랐으면서도 등짐을 지던 시절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 결국 패가망신을 자초했다. 마치 이 사자성어의 뜻을 보다 더 명확히 보여주려고나 한 듯 검찰은 이명박의 혐의를 대통령 당선 전후로 나눠 분리 구형했다. 1992~2007년 사이에는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332억원을 빼돌렸으며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러 명목으로 거액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대중의 욕망에 편승해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높은 수레에 올랐음에도 등짐 지던 시절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탐욕은 쉬 억제되지 않는 맹목적인 질주본능에 가깝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도 더 가지려는 욕심은 끊임없이 고개를 든다.

이명박은 분명 비난과 지탄, 그리고 무거운 형사적 처벌을 받아야할 나쁜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과연 이명박 한사람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이명박의 온갖 감언이설에 혹해 그를 호화로운 수레 위에 앉혀준 사람들은 국민들이다. 비록 도덕적으로 약간의 흠결은 있을지 몰라도 경제만은 제대로 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에 휘둘려서 말이다.

등짐을 지던 소인은 수레 위에 올라앉아도 여전히 등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법이다. 모두가 이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니 국민들은 이명박만 욕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해 판단을 그르친 자신들도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