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버리지 못하는 버릇

2019-10-29 (화) 12:00:00 윤영순/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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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경력 50년이면 무엇이 언제 필요하게 될지 미루어 짐작하게 되니, 작은 것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이렇게 해서 모아둔 크고 작은 플라스틱통과 유리병이 선반 위에 가득하다.

1970년, 뉴욕 플러싱은 내 첫 보금자리가 있던 곳이다. 지하철 입구에는 울워스 백화점을 비롯해 빵집, 보석가게, 사진관 등등의 작은 가게들이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질서정연하고 아기자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서 산 예쁜 터퍼웨어tupperware) 용기에 담긴 음식은 먹고 나면 차마 그릇을 버릴 수 없었다. 그 때는 비닐봉지가 아니라 누런 종이 봉투에 물건을 담아 주었는데, 들고 올 때 바삭거리는 종이의 질과 촉감이 좋아 사용한 후에는 차곡차곡 접어 모아두곤 하였다.

몇년 전 뉴욕 플러싱을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어 았던 동네와 주말이면 산책삼아 즐겨 찾았던 키세나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던 키 작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평화롭던 길가 단층집들과 공원 벤치에 앉아 햇살을 즐겼던 아늑한 전원풍경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하철 입구에 밀집해 있는 건물과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간판들만이 내 환상을 깨웠다.

어느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음식을 함께 나눌 좋은 사람과의 만남도 점차 소원해지는 요즈음이다. 세월이 가면 사람이나 물건이나 손때 묻고 바래지는 건 자연의 이치이거늘, 버리지 못하는 내 버릇도 이제는 슬슬 버릴 때가 되었는가 보다.

<윤영순/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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