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수저

2019-10-22 (화) 12:00:00 이재훈/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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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금은 부의 상징이지만 유럽에서는 부잣집의 자녀가 태어나면 입에 은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고, 천주교에서 대부가 대자의 세례를 받을 때 은수저를 주던 것이 유래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은수저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특별함을 묵시적으로 나타냈다.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은수저 대신에 금수저란 말이 나왔다. 은수저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인지.


흙수저란 말도 나오면서 빈부의 차는 심연보다 더 깊어만 가고 있다. 극과 극이다. 이젠 다이아몬드 수저가 나올까 봐 겁이 난다.

금수저가 등장한 것은 금이 은보다 값어치가 훨씬 높아서 그런 모양이다. 요즈음은 금이 은 보다 거의 100배 가까이 비싸다.

자본주의에서는 흔히 돈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나온 사람은 흙수저를 가지고 나온 사람과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에서 비교를 할 수가 없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마라톤을 한다면 금수저는 거의 반환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면 무리한 것일까.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세상에 오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는 사람이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서 인생이 크게 좌우된다. 우리가 물고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과 제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지금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금수저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돈 걱정 없이 한 번 살아보고 싶다. 흙수저의 고난은 한 번으로 끝냈으면 한다.

<이재훈/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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