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금 성급히 해보는 2020 전망

2019-10-1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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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엘리자베스 워런이 선두로 치고 올라온다는 여론조사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레이스 초반 3위권이었던 워런은 몇 차례 토론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서히 지지율을 올리더니 지난달 ‘대선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려온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져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도 워런이 조금씩 앞서가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결과 하나하나에 매달리기보다 전체적인 추세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최근 나오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들은 뚜렷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워런의 지속적인 상승, 그리고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의 지속적 하락이다.
바이든 앞에는 우크라이나 악재가 놓여있다. 샌더스도 건강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지자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유력후보 3명과 트럼프의 나이를 둘러싼 이슈도 이 가운데 가장 어린(?) 워런에게는 나쁠 것이 없다. 표의 확장성도 괜찮다. 심층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민주당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 상당수가 워런에게도 호감을 보인다.


워런과 바이든 간의 격차는 미미하지만 여론이 움직이는 추세와 방향으로 볼 때 결정적 하자나 실수가 없는 한 워런은 9개월 후 결정될 민주당 후보로 가는 궤적에 이미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어떤 흐름이 형성되면 여기에 편승하려는 ‘밴드왜건’ 현상이 나타난다. 당내 지지도에서 한참 뒷순위였던 노무현이 어떻게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대통령까지 됐는지 떠올려보라.

만약 워런이 트럼프와 대결하게 된다면 승산은 어느 정도 될까. 13개월 후 치러질 대선의 변수는 너무 많다. 트럼프를 옥죄고 있는 탄핵정국도 그렇고 선거 즈음의 경제상황도 표의 향방을 크게 좌우할 것이다. 이런 미래의 상황을 배제하고 본다면 워런의 승산은 상당하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지지층의 뜨거운 결집이 필수적이다. 2016년 당선이 거의 기정사실화 됐던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 패한 것은 여론조사에서 그녀를 지지한다고 했던 유권자 상당수가 실제로는 표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권자들을 일으켜 세워 투표장으로 이끄는 것은 열정이다. 워런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2016년보다 훨씬 더 많은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투표장에 몰려갈 것이다.

2016년 트럼프가 승리하자 민주당을 지지해온 블루칼라의 이반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 대선에서 지지 정당을 바꾼 유권자는 9.8%였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트럼프로 옮겨간 표는 그리 많지 않았다.

2012년 오바마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가운데 트럼프에 표를 던진 사람은 3.6%에 불과했다. 2012년 공화당 롬니에게서 2016년 힐러리로 간 표 1.9%를 빼면 민주당 이반 표는 1.7%에 불과하다. 나머지 4.3%는 2012년 오바마에서 2016년 제 3당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이었다. 이들은 후보만 괜찮다면 언제든 민주당으로 회귀할 준비가 돼 있는 유권자들이다.

워런의 공약을 놓고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의 붕괴, 날로 극심해지는 양극화 등 병들어가는 미국사회를 치료하려면 가벼운 시술이 아닌 대수술이 필요하다. 어정쩡한 스탠스로는 아무 것도 고칠 수 없다. 아주 강력한 처방을 해야 정치적 협상 등을 거쳐 그나마 실효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대선 레이스 초반 바이든이 선두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이길 확률, 이른바 ‘당선가능성’(electability) 덕분이었다. 하지만 당선가능성은 선거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나 판명되는 무의미한 지표일 뿐이다. 지난 대선 레이스 초반 트럼프의 당선가능성을 높게 본 정치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트럼프조차 자신은 당선가능성이 없다고 여겼을 정도다.

여론의 흐름과 데이터, 그리고 정치관련 칼럼들을 끼적여오며 생긴 비과학적인 촉을 종합해 볼 때 2020년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감히 진단해 본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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