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태어나는 시간에 누군가는 떠난다. 바람을 타고 멀리, 마음에 추억만 남겨놓은 채 아주 먼 곳으로 간다. 장례식장에는 대부분 연세 지긋한 조객들이 앉아 있었다.
줄지어 서있는 조화 속 하얀 국화처럼 노인들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나도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왠지 허무하다거나 그렇게 슬픈 감정이 밀려들지는 않았다.
고인의 나이 여든여섯. 아무리 백세 시대라지만 떠난다고 슬퍼서 가슴이 미어지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관 속에 누운 그분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든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누군가가 다가와 부르면 금세라도 일어날 듯한 모습.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이 저럴까 싶었다. 언젠가 숲에서 만난, 빈 몸으로 서있던 노목이 생각났다.
밑동에 마치 동굴 하나가 들어앉은 듯한 나무였다. 땅속의 뿌리와 땅 위의 기둥을 연결하며 나무 전체의 중심을 잡는 게 밑동이니 가장 튼실해야 하는 부분 아닌가. 사람도 식물도 중요한 건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일 텐데 노목은 그 중심을 잃고서도 남은 삶을 겉껍질만으로 의연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받은 인상은, 미련과 집착을 다 비운 끝에 얻었을 법한 평화로움이었다. 살면서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풀리지 않을 때 나무 밑동의 비어있던 공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 초연한 듯한 평화로움 때문일지 모른다.
고인의 손자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말하는 시간에도 마음이 아프다기보다는 그분이 참 다정한 할머니였구나, 생각했다. 건장한 손자였다. 키도 훤칠하고 당당해 보였다. 20대 후반이나 서른쯤 되었을까.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할머니가 빚어주던 만두를 추억했다. 만두의 맛도 맛이지만 그는 할머니와 만두 빚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듯하고 잘생긴 할머니 만두는 그의 차지였고, 자기가 만든 한쪽이 터지고 볼품없는 만두는 할머니 차지였다고 했다. 할머니가 좋은 것은 늘 자식들에게 양보하는 성품이기도 했지만, 손자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못생긴 만두를 그렇게 맛있게 드셨다는 거였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할머니와 손자가 만두 만드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못난 만두 때문에 더 재미있고 웃음 가득했을, 참으로 정겨운 그림이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하물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동참한 그들이 나누던 추억이 어디 그뿐이었을까.
한 사람을 보낸 뒤에 남는 풍경이 쓸쓸하지만은 않다면, 그건 추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문화와 세대가 다르고 언어와 정서가 달라도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하는 시간으로 그들은 유대감을 키웠을 터. 가족이 한집에 살고 있어도 타인처럼 지내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 시대에, 그들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관계였으리라. 짐작만으로도 가슴이 촉촉이 젖는 느낌이었다.
나의 아들은 돌아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무엇으로 추억할까. 중학교 졸업하고 이민 왔으니 열다섯 이전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 아들도 할머니와 송편도 만들고 만두도 빚으며 그 청년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추억할까. 초등학교 때 다리를 다쳐서 깁스하고 등하교하며 할아버지와 나누던 그 많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을까. 어릴 때 외갓집 마당에서 외할아버지가 장대로 털어낸 대추를 온 식구가 같이 줍던 일은 나에게만 있는 추억일까.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시인의 시를 생각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겠지만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영원히 떠난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일인가. 그건, 그 사람이 살며 공유했던 세상을 남아있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안겨주고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상실감을 극복하고 일어서기 전까지는, 과거에 그와 함께하던 공간에 홀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고독과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은 다르다.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을 때조차 홀로 있어야 하는 외로움을 우리는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떠난 자리에 남은 추억만으로 공허감을 얼마나 달랠 수 있을는지.
할머니와의 과거를 추억하며 기어이 눈물을 떨구고야 마는 고인의 손자 마음을 읽으며 아직은 어린 나의 손자 생각에 잠긴다. 내 손자들이 저 나이쯤 되면, 할머니의 속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나이가 되면 나를 어떤 할머니로 기억할까.
그 나이에 이르는 동안 나도 손자들과 음식도 만들고 동화책도 읽으며 깊이 교감하고 싶다. 파란 눈 세상에 태어난 손자들이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할 줄 알면 좋겠지. 햇살 가득한 텃밭에서 할아버지와 모종도 심고 벌레도 잡으며 흙과 친해져서 노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상상 속에서 행복한 욕심을 마음껏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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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