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공동체, 그 이후

2019-09-24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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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목사님은 여전한 모습이었다. 별안간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지난 주 식사를 함께 했는데 바로 엊그제 뵌 듯 편안한 얼굴, 느릿느릿한 말투도 여전했다. 올해 만 78세인데 “산에서 살아서 건강하다”고 자랑하신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쩐 일인가 했더니 “미국 오면서 옛날에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 생각이 났다”고 하신다. ‘그 빨빨거리던 여기자 아직도 있나’, 이렇게 돼서 나를 부른 모양이었다.

벌써 20년도 넘었나보다. 한창 종교담당 기자로 뛰던 1997년 미주두레본부가 창립됐다. 곧이어 베이커스필드에 두레마을이 세워졌고, 그때부터 약 5~6년간 미주두레본부는 장학생 사업, 젊은이운동, 북한사역, 두레마을공동체 등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했다. 두레만 쫓아 다녀도 기사거리가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고, 두레의 운동방향이 개인적인 가치관과도 맞아서 더 열심을 냈던 한 때였다. 무엇보다 교회부흥이나 성전건축에 매달리지 않는 교회 공동체라는 점이 좋았다.

김진홍 목사 인터뷰도 오실 때마다 했다. 당시 내가 만나고 취재한 수많은 목회자 가운데 가장 존경하던 한 분이었고, 크게 보고 멀리 보며 민족과 역사와 인간을 아우르는 목회철학에 감화되기도 했다. 철학과 함께 언어분석학을 공부한 분이라 가장 어려운 이야기를 가장 쉽게 전하는 능력이 놀라웠고, 청계천 빈민사역과 남양만공동체를 이끌며 바닥까지 떨어져본 극한의 체험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이 두둑했다. 나중에 뉴라이트 운동에 뛰어들어 정치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걸 보면서는 왜 저러시나, 실망하기도 했지만 김진홍 목사라는 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김진홍 목사 하면 두레요, 두레 하면 공동체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그 운동이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1976년 청계천에서 철거당한 빈민들과 함께 남양만 갯벌을 개간하여 처음 세운 남양만두레마을이 실패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곳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도 한때는 수십명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이루고 62에이커 땅에 각종 유기농 과실수와 채소를 심어 한인들에게 공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책임자들만이 거주하며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국 동부와 괌, 중국, 일본 등지에 세웠던 두레마을들은 지금 거의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지난 40여년간 국내와 해외 10여군데 두레마을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한 곳이 두군데 있는데 지리산두레마을과 동두천두레마을이다.
경남 함양에 자리 잡은 지리산두레마을은 20년전 이곳서 미주두레본부장으로 일했던 김호열 목사가 2002년 귀국해 조성한 생태공동체로, 삶과 신앙이 조화된 열린 마을로 지금까지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두천두레마을은 김진홍 목사가 2011년 구리두레교회에서 은퇴하면서 퇴직금으로 동두천 산야의 돌산 8만평을 사서 개척한 공동체다. 은퇴 당시 의사로부터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살 것”이라는 말을 듣고 새로운 개척에 나섰다는 김 목사는 “바른 성경적 기초아래 신앙, 생활, 산업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삶이 공동체의 목적”이라고 전했다. 교회, 수도원, 마을, 학교, 농장의 5개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데 두레교회에는 4~500명이 모이고, 은퇴부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두레마을은 일하고 농사짓고 봉사하는 복지공동체이며, 영성수련을 위한 수도원은 10일 금식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는 수십개의 기독교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함께 농사짓고 노동하며 성경적인 삶을 실천하려고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다. 드물게는 수십년 유지되기도 하지만 몇 년 못 가 해체되거나 분열되는 공동체가 더 많다. 원시사회부터 수십명씩 무리지어 살았던 인간의 본성에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본성도 있지만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본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리산두레마을 김호열 목사의 글을 보면 공동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다. 공동체의 이상이 아무리 숭고해도 사람들끼리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계속 부딪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적응시키는 내적 성화가 있을 때 공동체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과정이 참된 수행이라는 고백이다. 결국은 리더십이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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