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클래식] 가을이 반추하게 하는 것들
2019-09-13 (금)
이정훈 기자
내가 어릴적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가 ‘값이 천냥이게’ 하시는 어머니의 빈정거림이셨다. 그 무엇이 잘못됐다고 하시면 될텐데 어머니는 늘 꾸지람 앞에 ‘값이 천냥’이란 말을 붙이시곤 하셨다. 천냥이 과연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무개가 그것을 할 줄 알면 값이 천냥이게, 만약 그렇다면 값이 천냥이게’ 하시는 어머니의 표현은 어머니의 인격조차도 의심스럽게 만드는, 정말 귀를 틀어막고 싶은 어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보니 나 자신이 요사이 그런 어투를 자주 쓰고 있는 모습에 스스로 깜짝 깜짝 놀라곤한다. 당시에는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지 살면 살수록 인생에 대하여, 아니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정말 ‘값이 천냥’이란 말이 절로 나오곤한다. 요사이 본국에서 조 아무개의 장관 임명 문제로 여론이 뜨겁다. 한마디로 ‘그럴줄 몰랐다’는 것이고 ‘저라고 별 수 있나’, ‘값이 천냥이게’ 하는 실망감과 냉소, 분노가 가득한 사회로 돌변하고 있다. 조 아무개는 그렇다치고 거기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조선시대의 천냥은 요즘 화폐로(정확한 환산은 불가능 하지만) 대충 1억의 가치는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는 삶이 피폐했기 때문에 그 가치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컸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서민이 쉽게 만질 수 없는 돈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천냥을 대략 100으로 친다면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역설적인 것은 누구나 천냥의 가치가 나가는 삶을 바라지만 또 그것 때문에 오히려 삶이란 때때로 더욱 추악하게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상류 사회를 지향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행사하며 살면서… 입으로는 개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부르짖는다면 과연 누군들 그의 말과 인격을 신뢰할 수 있을까? 반대로 흑수저로 태어나 상류 사회를 동경하면서 자포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과연 값나가는 삶일까? 오히려 상대적인 보상심리 때문에 그 누구를 욕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욕먹는 사람보다도 더욱 비참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계절이 가을의 문턱으로 선뜻 다가섰다. 계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표상이기도하다. 계절이 없다면 우리는 달력이나 얼굴에 느는 주름살 따위로 밖에는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됐을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계절이 있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변화를 느끼며 오래(?) 살아 갈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인지도 모른다. 가을이 반추하게 하는 것들? 좋은 음악… 시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가을을 느끼기 위하여 가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시는 오직 시인이 느끼는 가을일 뿐, 가을의 본질은 오직 가을만이 줄 수 있는 그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의 ‘빙점’이란 소설이 큰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물이 얼어붙는 온도를 우리는 통상 빙점이라 부른다. 영혼이 얼어붙는 온도… 그것 역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강한 영혼이라해도 갑자기 혼자된 사람은 외로움을 참아내기 힘든 법이다. ‘빙점’이란 소설은 어쩌면 누구나 혼자 걸어야하는 인생의 그 고독한 길을 먼저 걷게된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고 또 아무나 쉽게 걸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강한 자의식, 재능… 이런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출세의 문제에 있어서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홀로 됐을 때 우리를 우리에게서 구원해 주는 것은 언제나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의지 밖에는 없다.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인생의 빙점… 그 순간 순간 마다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는 누구나 가을이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상 1도. 그것은 (빙점직전의) 얼음이 얼지 않는 가장 차갑고도 순수한 온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뜨겁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사막처럼 고독하면서도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가장 신선한 온도이기도 하다. 영혼으로 말하면 고독… 가을의 온도라고나할까. 값이 천냥? 과연 우리는 누구라하여 그처럼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가을이 그렇듯, 인생의 고독에는 거짓이 없다. 만약 가을이 아직 춥지 않다면 우리는 한번쯤 이 가을이 반추하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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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