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동
가난한 동네 듀플렉스 이 층에 새롭게 둥지를 튼 지 한 달 되는 날, 아래층 주인 부부를 초대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주인 부부는 우리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다.
이사 오던 날, 짐이 많지는 않아도 힘들게 이삿짐을 날랐기에 저녁은 밖에 나가 먹으려고 했다. 우리가 처음 시작하는 살림이라는 것을 알고 집주인 제이슨이 저녁은 자기 집에서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그러마고 했지만, 앤은 달갑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으나 별다른 이견은 내지 않았다.
우리를 초대하면서 특별한 주문을 했다. 식기는 각자 자기 것을 가지고 와 달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주문이야? 아예 초대하지 말든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이슨과 부인 캐서린이 위생 관념이 지나쳐서 남이 쓰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접시, 포크, 와인잔을 세트로 박스에 담아 들고 갔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음식을 준비한 것 같았다. 녹색 파프리카 속에 다진 햄버거 고기를 섞어 만든 밥을 채워 넣은 이탈리아식 음식을 차려놓았다. 사람은 넷인데 식탁에 의자가 두 개뿐이었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 감이 잡히질 않아 망설이다가 앤을 보았다. 미국에서 나서 자란 앤은 뭘 좀 아나 했는데 앤 역시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렇다고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앤에게 앉으라는 의미로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앤도 혼자 자리에 앉기엔 어색했는지 그냥 서 있었다.
눈치 챈 제이슨이 자기들은 의자 하나에 같이 앉는다면서 캐서린을 무릎 위에 앉혔다. 할 수 없이 나도 제이슨이 한 것처럼 의자에 앉아 앤을 무릎 위에 앉혔다. 오른팔로 앤의 허리를 감싸 뒤로 넘어가지 않게 받쳐주었다. 식기를 가져갔기에 설혹 앤이 무릎 위에 앉아 있을망정 개별 접시에 차려놓고 먹었다. 와인도 잔을 따로 들고 마셨다. 나는 왼손도 오른손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기에 왼손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날 저녁 우리를 당황하게 한 것은 앉은 자세만이 아니었다. 제이슨과 캐서린은 저녁 식사 내내 접시 하나에 포크 하나 가지고 캐서린이 아기 먹여주듯 제이슨을 먹여주고 자신도 먹었다. 와인도 잔 하나를 가지고 서로 번갈아 가며 마셨다.
별나다고 생각할까 봐 그러는지 표정을 살피던 캐서린이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부부는 모든 걸 하나만 장만하면 돼요. 칫솔도 하나, 커피잔도 하나, 포크도 하나, 의자도 하나면 다 해결돼요.
―돈이 많이 절약되겠네요.
나는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해주었다.
―돈만 절약되는 게 아니에요, 사랑도 절약되지요.
―사랑이 어떻게 절약되는데요?
―번거롭게 의견을 물어볼 것도 없고…. 사랑은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언제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면서 물어보던가요?
앤과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 저녁 식사 후,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는데 그때도 캐서린은 제이슨이 벌린 다리 사이에 끼어 앉아 찻잔 하나로 서로 번갈아 마시는 게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처럼 보였다. 앤이 결혼 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20년이나 됐지만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단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고 들었는데 잘만 다독이면 평생 신혼처럼 살 수도 있다는 암시를 받는 것 같았다.
앤과 나는 제이슨 부부를 흉보면서 산다. 아무리 사랑한다손 치더라도 그건 너무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다고 다 틀린 것만은 아니다. 부러운 면도 있다. 두 사람은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았다. 사랑이 진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이 같은 면이 있다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던가, 결혼식과 같은 사회적 통념에 얽매이지 않기로 한 것이라든가, 돈에 노예가 되어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그런 생각은 서로 통하는 데가 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앤과 내가 앞서가는 면도 있다. 제이슨 부부는 남편이 직장에 다니고 캐서린은 집안일만 하며 산다. 그러나 앤과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집세는 내가 내고 앤은 식비를 담당하기로 했다. 카드나 통장도 따로 쓴다. 서로 각자 돈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고 관심도 없다.
돈에 관심이 없는 것까지는 좋으나 앤은 여자이면서 미모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 번도 화장해 본 일 없는 얼굴에 생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맨 앤이 예쁘지는 않지만, 내게 없는 똑 부러지는 면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주인 부부를 초대했으니 집 안 청소도 하고 가구도 정돈했다. 앤은 직장에서 일이 끝나는 대로 한국 식품점에 들려 식자재를 사 오기로 했다. 카톡으로 식품점에서 사 와야 할 목록을 보냈다. 잡채를 만들려면 당면 4인분 하고 소고기도 부드러운 안심으로, 목이버섯과 피망, 당근과 양파도 목록에 적었다. 사실 나는 앤보다 음식 솜씨가 낫다. 신접살림이라 접시며 식기가 두 벌뿐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어젯밤 앤과 의논해 봤다. 한 벌을 더 장만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도 제이슨처럼 식기는 가지고 오라고 할까 하다가 가지고 오라고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거실에 가구라고 해야 삼 인용 가죽 소파 하나뿐이다. 길가에 내놓고 10달러라는 사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앤이 집어온 중고품이다. 그래도 그럴듯해 보였다. 구식이기는 해도 단단하게 생긴 가죽 소파다. 낡고 때가 껴서 꾀죄죄하게 보여서 그렇지 잘 손질해 놓으면 쓸 만한 물건 같아 보였다.
앤도 눈썰미는 있어서 척 보면 집어와도 될 물건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할 줄 안다.
바래고 갈라지고 벗겨진 게 눈에 거슬렸지만, 앉아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닦고 손질하는 것은 내 몫이다. 코팅과 염색까지는 못하고 약을 발라 광이나 내는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가죽 닦는 물약을 바르고 걸레로 깨끗이 문질렀다. 쿠션이 딱딱해서 좀 푹신하게 하려고 소파 방석을 분리해 뒤집었더니 레벨에 영국 국기가 그려있고 샤펠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가구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영국산에 레벨까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괜찮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션이 딱딱한 건 방석 안 스펀지가 굳어서 그런 것 같아 꺼내 햇볕에 말려 다시 넣으면 될 것이다. 방석 지퍼를 열고 스펀지를 잡아당기는데 무엇이 발밑으로 툭 툭 떨어진다. 신문지에 싸인 뭉치가 여러 개 나왔다. “이게 뭐지?” 혼자 중얼대며 신문지를 벗겼다. 백 달러짜리 뭉칫돈이다. 깜짝 놀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몰래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사방을 둘러봤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다. 정말 돈인지 확인해 보고 만져 보았다. 백 달러짜리 지폐가 분명하다.
거짓말 같은 행운에 얼떨떨했다. 당혹스러워서 그런지, 흥분해서 그런지 주체할 수 없이 들뜬 기분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다른 뭉치도 풀어 보았다. 역시 돈이다. 한 뭉치면 만 달러일 것이다. 이게 몇 뭉치냐? 다음 방석을 열었다. 방석이 세 개 있으니 쏟아져 나온 뭉칫돈만 해도 3십여 개가 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잠시 망설였지만,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앤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뒀다. 내게 온 행운을 조급하게 앤에게 말했다가는 옴이 붙을 것 같아서 앤에게는 당분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뭉칫돈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았더니 한 보따리다.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둘까 생각해 보았다. 자동차를 도둑맞아도 문제지만 차 사고라도 나면 금세 들통나고 만다. 집 어딘가에 감춰둬야 하는데 딱히 비밀스러운 곳이 없다.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도둑이 들어와도 찾지 못할 곳에 감춰야 한다. 냉장고 냉동실 깊숙이 넣었다. 앞에는 냉동식품을 끌어다 보이지 않게 막아놓기는 했어도 검은 비닐 보따리가 너무 커서 다 가릴 수는 없었다.
다른 좋은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서 숨길만 한 곳이 없다. 화장실 세면대 밑에 수납장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다 감춰두면 손님이 화장실에 들어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 그곳도 안전한 곳은 못 된다. 그래도 냉동실이 가장 믿음직스럽다.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히죽히죽 웃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떨리는 게 제정신이 아니다. 마음이 산만해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어림잡아 3십만 달러는 넘지 싶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부자가 되다니, 이 판국에 잡채고 뭐고 만들 기분이 아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디너인지 뭔지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이유도 없다. 돈만 있으면 좋은 아파트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꺼림칙하고 뻔뻔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아래층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오늘 저녁 디너를 취소한다고 알려줬다. 기대에 어긋난 듯 캐서린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냐면서 몹시 서운해 했다. 몸이 얼마나 아픈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마지막 디너가 될지도 모르는데 다시 고려해 볼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마지막 디너라니?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섭섭하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톡 쏘아 말해 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리 매정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디너를 취소했으니 식품을 사 올 필요 없다고 앤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음이 초조하고 들떠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유 한 컵을 따라 앉았다 섰다 하면서 마셨다.
저 돈이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새 차를 살 수도 있고, 여행도 갈 수 있다. 빨간 스포츠 오픈카를 몰고 달리는 상상도 해 본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으로 휴가도 떠날 수 있다. 돈만 있으면 큰소리치면서 살아도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앤은 미술학원에서 아이들 그림을 지도한다. 파트타임으로 목금토 3일만 일한다. 목금은 오후에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토요일은 일찍 시작해서 오후면 끝난다. 앤이 일찍 돌아왔다. 앤이 내 얼굴빛을 살피는 것 같아서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말없이 저녁을 먹자니 어색하고 심란해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냉동실을 힐끔거렸다.
지나가는 말처럼 왜 디너를 취소했느냐고 앤이 물었다. 그냥 저녁 준비할 기분이 아니어서 그랬다고 옹색한 변명을 했다. 앤은 그대로 넘어가는 것 같다. 앤이 찬물을 마시겠다며 일어났다. 얼른, 먼저 냉장고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물병을 꺼내 앤의 컵에 따라 주었다. “얼음 필요 없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앤은 물컵을 받아 들고 서서 고맙다는 말 대신 빙긋 웃어보였다. 앤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빈 접시를 걷어들고 싱크대로 갔다. 얼른 따라가 설거짓감을 빼앗았다. 그날 저녁 부엌일은 모두 내가 맡아했다.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앤이 한마디 던진다.
―뭐 저녁에 특별히 할 말이라도 있어?
―특별한 말? 아니야,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달걀 프라이를 하고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끓였다. 느닷없이 착해진 나의 모습을 보고 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한식집 주방 일을 시작한 새내기 보조여서 일요일 근무는 내 몫이다. 하지만 오늘은 일하러 갈 수 없다.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서 쉬겠다며 엄살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귀를 쫑긋 세우고 통화내용을 듣던 앤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한국 엄마한테서 전화 받았어?
―일은 무슨 일, 그저 집에 있고 싶어서 그래. 좀 쉬면 안 돼?
―그런 건 아니지만, 내일은 집세를 내야 하는데 마련해 놓은 돈 있냐구….
―걱정하지 마. 그까짓 돈 준비하고 말고 지.
―어쭈, 폴 언제부터 그까짓 돈이야? 나 돈 없어, 꿔 달란 소리 하지 마. 난 정말 돈 없단 말이야, 알아서 해.
앤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흘리고 앤의 부엌 출입을 감시했다. 앤은 말할 때마다 “어쭈”를 잘 써먹었다.
머릿속은 저 돈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복잡하다. 앤에게 말할 수도 없고, 은행에 넣을 수도 없다. 큰돈을 은행에 넣으려면 출처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앤이 컴퓨터 모니터를 켜면서 TV 좀 끌 수 없느냐고 묻는다. 마감 시간이 다가온 작업을 하겠다니 어쩔 수 없이 양보해 주는 수밖에 없다. 좁은 거실에서 서성이다가 창가로 갔다. 창밖을 내다봤다. 눈에 보이는 건 건성일 뿐 생각은 온통 돈에 가 있다. 앤은 서성대는 내가 성가셨던 모양이다.
―그러고 있지 말고 도서관에라도 가보지 그래.
―도서관?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등 뒤에 서 있으니까 나까지 불안하잖아, 앉아서 책이라도 읽든지.
―책 읽을 기분 아니거든? 나 오늘 나가지 않을 거야. 온종일 집에 있을 거야.
말을 해 놓고도 괜히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앤이 없으면 돈을 꺼내 세어볼 텐데 하는 생각에 앤이 행복을 빼앗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앤이 일어나 부엌으로 가는 바람에 얼른 따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았다. 이번엔 앤이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쏘아보더니 톡 쏘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폴, 왜 이렇게 불안해해? 뭐 잘못 먹었어?
―불안하다니 뭐가 불안해.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럼 왜 날 졸졸 따라다니면서 참견이야?
―뭐, 도와주려고 한 것뿐이야. 오해하지 마.
―어쭈, 도와주겠다고? 폴은 앉아서 책이나 읽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알아?
―커피 마시려고? 머그잔 이리 내놔 내가 타서 줄게.
―저리 비켜, 내 커피는 내가 타야 입맛에 맞아, 크림 어디 있지?
―크림 달라고?
냉큼 냉장고 문을 열었다. 플라스틱 크림 병에는 크림 메이트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거꾸로 들고 흔들었으나 겨우 몇 방울 떨어지고 만다. 앤은 실망한 듯 나를 쳐다보더니 가서 사 오란다. 나는 빈 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후“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크림 없이 마시면 안 돼? 식품점에 가기 싫은데.
―폴, 지금 할 일 없잖아. 빨리 다녀오면 될 텐데 뭘 그래.
―그래도 오늘은 가기 싫단 말이야.
―어쭈, 폴, 나한테 혼나고 싶어?
앤이 던지는 농담에 화가 발끈 났다. 그러지 않아도 긴장하고 있던 참에 기분이 상해 큰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야, 말 삼가 해. 내가 싫다면 싫은 거야. 니가 갔다 오면 안 되니?
앤을 힐끔 쳐다보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책을 꺼내 펼쳤지만, 머릿속은 온통 냉동실 속에 숨겨둔 돈 생각으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돈이 머릿속에서 헤엄쳐 다녔다.
미국으로 유학 온 지 일 년이 넘었다. 나의 꿈인지 엄마의 꿈인지 여하튼 거창한 꿈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나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대학원 공부가 쉽지 않았다. 단단히 예습하고 강의실에 들어가도 이해가 어렵고 머릿속에 남는 것도 없었다. 보나 마나 성적이 잘 안 나올 게 뻔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취미다. 어떤 때는 엄마보다 더 보기 좋고 맛있게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 때면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유명한 호텔에 셰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했다. 친지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엄마의 소원이다. 대기업 문을 몇 번 두드렸어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엄마가 유학이나 다녀오라는 권유에 귀가 솔깃했고 해방을 맞는 기분이었다.
미국에 공부하러 와있으면서 처음 겪는 외국 생활이 어설프고 매사 엇박자만 났다. 낯선 사회, 여건, 분위기는 언제나 나의 어깨를 짓눌렀고 어딜 가나 불안했다. 그래도 안 그런 척하면서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며 견뎠다. 외롭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심해졌고 잘못하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겁이 났다.
힘들고 어려웠던 때에 친구가 앤을 소개해 주었다. 연상인 앤과는 대화가 잘 통했고 같이 있으면 안정감을 느꼈다. 우리는 어딜 가나 붙어 다녔다. 앤은 아는 것도 많았고 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뭐든지 잘 풀렸다. 형석이란 이름을 부르기 좋게 폴로 바꿔준 것도 앤 이다. 매사 의견 일치라기보다는 동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앤에게 끌려 다녔다. 두 사람이 합치면 돈과 시간이 절약될 것이라는 의견도 앤이 냈다.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같이 살면서 둘이서 계약 결혼처럼 약속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 스스로 장래를 내다보고 결정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석연치 않아서 앤에게 물어보았다.
―넌 어머니한테 우리가 살림 차렸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야, 난 폴처럼 마마보이가 아니거든?
예상하지 못했던 앤의 한마디에 흠칫 놀랐다. 그러지 않아도 마마보이로 보이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걱정했는데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모멸감이 들었다. 더는 엄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가 받기 싫다. 막상 받아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일부러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앤을 따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엄마의 눈높이에 앤이 탐탁지 않을 게 빤하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엄마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엄마의 욕망이란 덫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앤과 합쳤으나 이번에는 앤에게 의존하고 있어서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
돈도 생겼겠다, 이참에 독립해서 자존감을 찾고 싶다. 돈이 참 묘해서 없던 용기도 생기고 자신감도 들게 했다. 거기에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꿈까지 그려준다.
일탈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앤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세상에 도전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후련하고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솔직히 한국에 가면 앤보다 예쁜 여자도 많다. 잘하면 탤런트처럼 예쁜 여자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비집고 솟아올랐다.
이틀째 앤과 헤어질 궁리를 해 보지만, 앞뒤가 꽉 막혀서 좀처럼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새로 사 온 캘리포니아산 샤토르 와인을 마셨다. 그런대로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긴장 때문에 며칠 잠을 설쳐 푹 자고 싶다. 정말 깊이 늘어지게 잤다. 눈을 떠보니 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깜짝 놀라 한걸음에 부엌으로 달려갔다.
앤의 눈치를 살펴보았으나 들킨 것 같지는 않아 마음이 놓였다. 화장실에서 칫솔질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앤에게 집중되어 있다. 조마조마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빨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헤어지는 것도 운명이다. 앤 하고는 인연이 안 되는 모양이라고 치부했다. 오늘은 무슨 말이든 하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서려는데 앤이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잠깐 자리에 앉아 있으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폴, 바른대로 말해.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우린 이것으로 끝장이야.
―뭘 바른대로 말하라는 거야? 거기에다가 끝장이라니?
―냉동실 안에 검정 비닐로 싼 게 뭐지?
앤의 한마디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텅 빈 것처럼 멍하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머뭇머뭇하다가 되물었다.
―니 생각에 뭐 같아?
앤의 눈치를 살피며 뜸을 들이다가
―내가 잠시 보관하느라고 넣어 두었는데 그걸 너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해?
―보고까지는 필요 없어도 그것이 왜 거기에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혹시 강도질한 건 아니겠지?
―야, 너 사람을 뭐로 보고 그래, 이 여자 못쓰겠군. 넘겨잡지 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쭈, 이-여-자-!, 이제 말도 막 하자 이거지?
―그래 막가자는 거다. 나두 네가 헤어지자고 해도 눈도 깜짝 안 해.
―흠, 폴 속마음이 그렇다는 걸 모르고 같이 살기로 한 내가 바보지. 아무튼 10분 내로 돈의 출처를 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테니 그런 줄 알아.
앤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빈 접시를 들고 싱크대로 갔다. 그릇 부닥뜨리는 소리만 들어도 앤이 화가 잔뜩 나 있다는 느낌이 전해왔다.
앤이 경찰에 신고하면 큰일이다. 들통나면 돈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할 수 없지, 사실대로 말하고 내 돈이라는 걸 인정받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시치미를 뚝 따고 의젓하게 말을 꺼냈다. 소파 손질하다가 내가 발견한 돈이라고 말했다. 결국, 주운 돈이나 마찬가지니까 내 돈이라고 부연 설명까지 해주었다. 앤은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더니 “소파를 내가 10달러 주고 사 왔으니 그 돈은 내 돈”이라고 한다.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앤의 반응에 소리를 꽥 질렀다.
―야, 어째서 그게 니 돈이니? 찾은 사람은 난데. 넌 경우도 없니?
앤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내 물건에서 꺼냈잖아. 소파도 내 것이고 돈도 내 것이야. 폴은 간단한 상식도 몰라?
―허, 이거 사람 잡네. 내가 꺼내기 전까지 넌 돈이 있는 줄도 몰랐잖아.
―법적으로 저 돈은 내 돈이니까 넌 손대지 마. 저 돈에다가 손만 대면 그때는 경찰에 도난 신고할 거야. 그런 줄이나 알고 있어.
―뭐라구?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저 돈은 내 돈이야. 엇다대고 협박이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쿵“하고 내려쳤다. 내 말이 확고하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다. 공교롭게도 돈이 냉동실에 있다 보니 싸움이 났다고 생각했다.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 차 트렁크에 넣었다. 트렁크 문을 단단히 닫고 다시 이 층 아파트로 올라왔다.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앤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돈 도루 가져오지 못해? 안 가져오면 신고할 거야. 습득물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알아?
―이 바보야, 신고하면 다 날아간다는 걸 모르니? 신고하는 순간 저 돈은 네 것도, 내 것도 아니야 분명하게 알고나 신고하든지 말든지 해.
―신고 안 했다가 발각 나면, 폴 감옥에 가야 해.
신고는 무슨 놈의 신고, 앤이 겁주느라고 저런다고 생각했다. 콧방귀를 뀌었다. 이참에 헤어지자. 짐을 꾸려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황급히 방에 들어가 옷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구두도 꺼내 가방에 넣었다. 짐을 꾸리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눈 딱 감고 짐가방을 질질 끌면서 문을 열고 나왔다.
아래층 제이슨이 문밖에 나와 서성이다가 내가 가방을 들고 차로 가는 걸 보고 여행 가려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뭐,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캐서린은 어디 갔어요? 어제오늘 안 보이던데….
―병원에 입원했어.
뜻밖의 소리에 놀랍고 어리벙벙했다.
―어디가 아파서요? 병원에 입원까지 하다니요?
―원래 유방암이 오래됐거든. 마지막으로 신약을 임상시험 겸 써보려고 입원했어.
제이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몹시 추운 날 갑자기 밖에 나갔을 때처럼 머리가 띵했다. 아픈 줄 몰랐는데 유방암이라니, 거기다가 임상시험단계까지 갔다니, 막판이란 말이 아닌가? 유방암에 걸린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어보았다. 제이슨은 캐서린이 첫사랑이었다면서 결혼하기 전부터 유방암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방암인 줄 알았지만 사랑은 암보다 더 지독했단다. 결혼해 살면서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다시 재발했다며, 지금은 숨조차 쉬기 힘들어해서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했다. 말을 하는 내내 제이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매몰차게 디너를 취소해 버린 게 비정하고 이기적인 것 같아 후회스럽다.
이 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앤이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기다려 봐.
앤의 한 마디가 마치 내 운명을 가르는 판사의 나무망치 소리처럼 차갑게 들렸다.
―돈을 양성화해야 할 것 아니야. 신고는 의무야. 신고 안 했다가 나까지 감옥에 가고 싶진 않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맥이 탁 풀렸다. 빈 소파에 주저앉았다. 허탈한 마음에 화가 나는 건지, 기가 막힌 건지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미칠 것 같아 죽고 싶다. 앤이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진정한 사랑은 돈에 구애받지 않는 거야.
앤의 소리가 역겹고 구역질이 날 것처럼 들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려다 꾹 눌러 참았다.
부엌에서 남녀 경찰관 둘이서 조서를 꾸민 종이를 내밀면서 서명하란다. 돈은 정확하게 32만 달러다. 주인을 찾을 때까지 경찰에서 보관하겠다면서 명함을 놓고 갔다.
그날 이후 앤과 나는 원수처럼 마주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집에 같이 살면서 음식도 나눠 먹고 있지만, 못 본 척하면서 지냈다.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하는 생각을 하면 원망스럽다. 서로 말 안 하고 지내도 견딜 만했다. 그동안 별의별 궁리를 다 해 보았다. 집을 나가 혼자 살까 생각해 봤지만, 능력도 되지 않고 자신감도 없다. 내 몫은 아파트 세만 벌면 되는데 그것도 만만한 게 아니다. 먹는 건 앤이 해결한다.
우유가 다 떨어졌다. 나는 우유를 마시는 데 앤은 우유는 마시지 않고 커피만 마신다. 메모지에 우유가 떨어졌다고 써서 냉장고 문짝에 붙여놓았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매번 앤이 먹고 난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바람에 화가 났다. “자기가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놓아두지 말고 제때 닦아 놓기”라고 써 붙였다. 다음날 “소변볼 때 변기 중간 뚜껑을 들고 누기“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보기 싫어 메모를 뜯어 꾸겨 버렸다.
일을 다녀왔더니 앤이 쓴 노트 한 장이 덩그러니 탁자 위에 놓여있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단다. 소파 주인을 찾았는데 남편은 죽은 지 오래됐고 할머니는 치매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원에 있단다. 할머니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할머니의 의견을 기다리는 중이다. 죽은 남편이 부자는 아니었지만, 구두쇠가 돼서 돈이라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했단다. 문제는 할머니의 정신 상태가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에게 뭘 물어보겠다는 건가. 차라리 할머니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소리를 듣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고 화가 나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밤에 한 침대에서 자지만 돌아누워 자는지 한 달이 지났다. 돈 생각하면 앤이 웬수 같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앤이 일하러 가고 없기에 집안 청소를 하기로 했다. 집을 나가려고 싸놨던 가방을 열어 다시 옷장에 걸었다. 한 달이나 청소를 안 했더니 집안이 엉망이다. 앤은 청소하다가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청소하고는 담을 쌓았다. 그러면서 답답하리만치 고지식하다. 고지식한 사람은 요령이 없다. 앤과 사는 한 부자 되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기는 해도 요령 많은 여자와 살면 속깨나 썩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전화벨 울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청소를 끝내고 앉아 휴대전화를 열어봤다.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앤이 한 전화다. 말 안 하고 지낸 지가 한 달이나 됐는데 전화를 걸다니, 뭐 급한 일이 생겼나? 아니면 교통사고가 났나?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교통사고가 난 사람을 보고도 못 본척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전화했어? 무슨 일 있어?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락가락하는 할머니가 그 돈을 양로원에 기부하기로 했대….
갑자기 머리가 띵 하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멍하니 앉아 있자니 허탈하고 한숨만 나온다. 쓰리고 답답한 속을 어디다 푸념할 데도 없다.
저녁때가 다 돼서 제이슨이 집에 있기에 아래층 문을 노크했다. 월세를 주기 위해서다. 테이블에 마주 앉자마자 고통 속에 갇혀 있을 캐서린의 소식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이슨은 마주 보던 시선을 창밖으로 피하면서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캐서린의 몸 컨디션이 마지막 치료에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포기한 상태란다. 그러면서 캐서린이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차라리 안락사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안락사란 말만 듣고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고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캐서린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측은하고 불쌍하다. 뭐라고 위로해 줘야 할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할 수도 없고, 그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엉뚱하게 나의 고통과 고민이 떠올라 털어놓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침울한 분위기가 깨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 제이슨이 가만히 듣고 있더니 한마디 팁을 들려준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면 보상이 따르게 되어 있다면서 알아보란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기에 이 층으로 올라갔다. 앤은 보상 이야기에 대해서 건성으로 들어 넘기는 게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직장에 가느라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참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이슨과 마주쳤다. 흐트러진 머리와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제이슨에게 캐서린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어젯밤 영원히 떠나는 캐서린의 손에서 체온이 다 사라질 때까지 잡고 있었다고 말하는 제이슨의 눈가가 온통 벌겋게 충혈 되어 있다. 제이슨을 위해 위로의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아무 말도 떠오르는 게 없다. 장례식에 관해서 물었고 준비 과정을 듣다가 헤어졌다.
온종일 어수선한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입상소감 l 신재동당선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소식을 듣고 기뻤다. 아니 미안했다. 젊은 사람이 받아야 할 상을 노인이 가로 채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노인도 상을 받으면 기쁘다. 주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자랑도 하고 싶다. 한평생 살면서 매우 기쁜 일은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상 받는 일이 으뜸이다. 매우 좋은 날도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칭찬 듣는 날이 가장 신난다. 미주 한국일보 문단을 뚫기엔 매우 힘들었다. 여러 번 낙방한 다음 받는 상이다. 지난겨울 캘리포니아에 비가 많이 왔다. 야산에 풀이 정강이를 넘었고, 야생화가 지 세상 만났다고 난무하다. 나는 야생화를 닮아 비 많이 온 해엔 좋은 소식도 온다. 미주 한국일보 문예상을 받게 된 건 소식 중엔 가장 귀한 소식이다. 재외동포 공모전에서 사진으로 대상을 받던 해에도 비가 많이 왔다. 비는 구름이 만들고 소식은 사람이 만든다. 좋은 소식 만들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소식의 장을 만들어주신 미주 한국일보에 고맙다고 인사드린다. 오늘 받는 이 상이 좀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듣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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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