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다도를 배우며

2019-08-21 (수) 12:00:00 유명현/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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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요즘 일본식 다도를 배우고 있다. 귀중한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차와 다식을 제공하며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 외에도 그릇, 다기 그리고 꽃을 미리 준비해서 손님과 함께 감상한다. 다도를 진행하는 시간만큼은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의 일생 일대 마지막 시간이라 생각하고 임한다. 다시 말해 귀중한 손님과 시간과 공간을 차로 즐기는 종합예술이다.

티백을 우려낸 차 내지는 말려놓은 꽃잎 차만 마시다가 장시간 공을 들여 차를 마신다는 것이 영 불편했다. 끝내지 못한 업무들이 머리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다도가 아니었다면 이 시간에 하고 있었을 다른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리저리 오가는 잡념들이 내려놓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도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수련이 됐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차, 먹고 있는 다식, 지금 이 방에 놓여 있는 꽃에 집중하도록 했다. 그러고 보니 다음에 내가 이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다는 기약도 없었고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차를 다시 만들어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마시는 차는 일생에 단 한번 마시는 유일한 차이며, 먹고 있는 다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에 놓여있는 꽃도 매 순간 시들어 다음 날엔 버려질 뿐이었다.

말차의 마지막 한 입은 주인에게 다 마셨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고의로 소리를 크게 내어 마신다. 다도가 끝났다는 가벼운 목례를 한 후 들어온 순서대로 퇴실을 했다.
다도를 배우면서 현재를 있는 그대로 품어 안는다. 현재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의 기약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나니 매 순간이 소중해진다.

<유명현/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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