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여름 음악축제의 망상

2019-08-21 (수)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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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명성의 야외 음악공연장인 할리웃 볼에서 매년 봄 한국일보 음악축제가 열린다. 그날 거기 가면 오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지난 4월 열린 올해 제17회 공연도 그랬다. 공연장을 2만명 가까운 한인들이 가득 메웠다. 남가주에 한인인구가 많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음악축제가 홍수를 이룬다. 2006년 시작돼 한국 음악축제의 효시로 꼽히는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비롯해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울트라 코리아, 워터 밤 서울 등 수많은 야외공연이 매년 여름 펼쳐진다. 하지만 일정이 겹치기 일쑤일뿐더러 출연자들이 ‘그 밥에 그 나물’이어서 참관자들은 오히려 줄고 있단다.

여름엔 지구촌이 다양한 음악축제로 들뜬다.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축제, 이탈리아의 베로나 아레나 축제, 오스트리아의 도나우인셀 및 잘츠부르크 축제, 세르비아의 엑시트 축제, 모로코의 마와진 축제, 브라질의 록 인 리오 축제,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축제, 미국 위스콘신의 서머 페스트 등이 특히 유명하다. 남가주 인디오 인근의 코첼라 축제도 70여만명을 동원하는 유명 음악축제다.


미국 사회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음악축제가 있다. 꼭 반세기 전인 1969년 뉴욕 교외의 한 낙농장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한국의 광복절 경축과는 전혀 관계없이 8월15일부터 주말 사흘간(실제로는 4일간) 열렸다.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산타나, 그레이트풀 데드, 크리덴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가수와 밴드 32팀이 출연했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거의 50만명이 참관했다. 전대미문의 대기록이다. 대부분이 히피였다. 덥수룩한 머리에 꾀죄죄한 옷차림 등 영락없는 거지행색이었다. 월남전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60년대 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했던 소위 ‘대항문화’를 극대화시킨 이벤트로 부각됐다. 히피들은 반전, 평화, 자유분방, 인간성 회복, 마약 예찬 등 기존 사회질서와 상반되는 기치를 내걸었다.

축제의 공식 명칭 자체가 ‘어퀘어리언 박람회: 3일간의 평화와 음악’이었다. 어퀘어리언(aquarian)은 ‘뉴 에이지’(신세대)를 표징한다. 축제 장소도 우드스탁이 아니었다. 주최측은 팝음악의 거성 밥 딜런이 사는 우드스탁 마을을 개최장소로 추진했다가 여의치 않자 인근 벧엘에 있는 600에이커 낙농장으로 바꿨다. 그래서 벧엘 록 페스티벌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출연자들 중 반전가수 조운 바에즈는 임신 6개월이었다. 시애틀 태생의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공식 스케줄이 끝나 청중이 대부분 돌아간 월요일 아침 2시간동안 신들린 듯 공연해 축제의 백미를 장식했다. 그는 미국 국가를 기타로 연주하면서 날카로운 전투기 굉음을 내 월남전에 얽매인 미국을 풍자했다. 그의 로열티는 전체 32명 출연자 중 가장 많은 1만8,000달러였다.

정작 밥 딜런은 출연하지 않았다. 영국 음악축제의 선약 때문이다.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비틀스, 롤링 스톤스, 사이먼&가펑클, 레드 제플린, 버드스, 시카고 등도 빠졌다. 그런데도 청중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교통이 완전 마비되고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가 벧엘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주 방위군 투입까지 고려했다. 그는 대신 야전병원을 차려줬다.

축제 후 주최자들은 10년차, 20년차, 25년차, 30년차, 40년차마다 기념공연을 개최해왔다. 하지만 ‘골드 애니버서리’(50주년)인 올해는 열지 못했다. 넓은 야외 공연장을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스폰서들도 선뜻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치안문제가 더 켕겼을 듯싶다. 첫해 축제는 평온하게 끝났지만 30주년 때 강간, 폭행, 약탈 등 범죄가 문제됐다.

세상이 자꾸만 피폐해져서인지 우드스탁 음악축제가 아쉽게 느껴진다. 미국-중국, 한국-일본이 각각 무역전쟁에 열심이다. 쌍방 모두 피해를 입는 무역 보복 대신 합동 음악축제를 열어 평화와 상생을 도모할 수는 없을까? 불장난(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막겠다며 스스로 불장난을 일삼는 김정은은 벧엘과 거리가 너무 멀다. 성경에 맨 처음 등장한 지명인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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