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슈 진단/모기지 이자율 낮은데 왜 주택시장 주춤하나

2019-08-15 (목)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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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주택판매 감소 등 주택시장 4년째 정체

▶ 집값 너무 올라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는 것

공급부족이 근본 문제… 신규주택 더 늘려야

낮은 금리, 저렴한 모기지 등 주택구입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 마련됐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낮은 이자율도 좋지만 주택가격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지역의 경우 주택가격은 이미 소득수준을 훌쩍 넘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랐으며 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에 비해 신규주택 공급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하는 ‘위대한 미국’의 경제는 강하다

금리가 하락하고 있으며 모기지 이자율은 수년 전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린웨이펀딩그룹 배준원 부사장은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며 “주식시장이 하락한다는 것은 그 만큼 주식시장의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옮겨가 채권금리의 하락을 부추기게 되고 결국 전반적인 이자율 하락을 견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주택 시장은 전혀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모기지 금리가 내려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주택 구입을 주저하고 있다.

6월 기존 주택 판매는 5월 대비 1.7%, 1년 전보다 2.2% 감소했다. 이는 2015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의 주택 시장이 4년 동안 정체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기지 은행 협회에 따르면 8월 첫 주 30년 만기 고정금리가 2016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484,350달러 미만의 평균금리가 4.01%, 이 보다 많은 대출의 평균금리도 3.96%로 더 낮게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하하면서 모기지 금리도 떨어졌으며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지난 3년 동안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미부동산협회 로렌스 윤(Lawrence Yun)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모기지 이자율 조정도 더 저렴해지고 30년 고정 모기지 같은 장기 대출도 10년 국채 수익률을 따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윤 이코노미스트는 “직장인의 월급이 증가하고 있으며 소비자 지출도 견고하고 실업률은 50년 만에 최저”라며 “미국의 국민들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렴한 모기지 이자율도 좋지만 주택 가격이 문제다. 모기지 이자율은 떨어졌지만 주택 가격은 그렇지 않다. S&P/Case-Shiller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주택가격은 지난 7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윤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이후 주택 가격이 임금의 약 3배로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올라버린 주택 가격은 아무리 노력해도 구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수준이 돼버렸다. 일반적으로 주택 시장도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형성되기 마련이지만 최근의 주택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장과 상관없이 ‘빈익빈, 부익부’라 할 만큼 주택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낮은 모기지 금리를 받는다 하더라도 주택가격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적당한 가격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 안 사는 것이 아니라 못 사는 것

워싱턴 지역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미주한인여성경제인협회 최태은 회장은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할 경우 거품에 대한 우려를 동반하지만 워싱턴 지역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최 회장은 “일반적으로 거품이라고 할 경우 지나친 대출이 문제가 되지만 북버지니아(알링턴, 폴스처치)에서는 70%에 달하는 주택소유주가 모기지를 다 갚은 것(payoff)으로 나타나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주택을 구매하고 싶어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으로 최근 북버지니아 개발붐을 타고 지금이 투자 적기라며 아무리 강조해도 실제로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부일 뿐이다. 새삼 경제양극화를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 북버지니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버지니아부동산협회(NVAR)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북버지니아 지역 인구는 연 5만명씩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신규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택 소유자에 대한 세금 혜택이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모기지 이자 공제를 75만 달러로 제한하고 주 정부나 로컬 세금 공제도 1만 달러로 깎았다. 목돈 마련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렌트가 아닌 주택 구입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다름 아닌 세금 혜택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주택 시장 활성화 위해서는 더 많은 신규 주택 공급 필요

8월 2일 마감된 모기지 신청은 전주대비 5.3% 상승했다. 그러나 재융자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16% 증가한 것으로 이는 낮은 모기지 금리가 새로운 주택 구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들이 새로운 집을 구입하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판매하는 것보다 재융자를 통해 머물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 회장은 “낮은 대출 금리는 주택 시장 활성화에 단기적인 효과를 줄 수 있지만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결국 주택 가격 상승을 완화시킬 수 있는 신규 주택 건설,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주택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연 100만 채의 신규주택 공급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10년 전 주택시장 붕괴도 책임이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주택건설업자들은 첫 주택구입자들을 위한 적정 수준의 주택 건설을 크게 줄였다. 이런 주택들은 처음 집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지만 건축업자들의 수익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은행들이 대출기준 완화를 통해 이런 간극을 메워 주었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면서 대출받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전국적인 주택 소유율은 크게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낮은 금리를 이용해 재융자는 한번쯤 고려하고 있지만 선뜻 주택 구매에 나서기까지는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모기지 은행 협회는 연준의 금리 인하와 금융 시장의 혼란에 비추어 앞으로 몇 주 안에 더 많은 재융자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윤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몇 달 동안 강력한 수요가 나타나기도 힘들고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하도록 할 만한 자신감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
-여성경제인협회 최태은 회장
-전국부동산협회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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