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정부 16년만에 재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인데 낙태 금지 논리와도 모순”
▶ 가톨릭계 반대 거세...일부 개신교 찬성여론
미국이 사형 집행 재개를 결정하면서 교계가 사형 제도를 둘러싼 찬반 논란으로 뜨겁다. [AP]
트럼프 행정부의 사형 집행 재개 결정이 종교계의 핫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연방법무부의 발표로 다시금 촉발된 사형제도 찬반 논란은 사법정의 구현이냐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냐를 두고 팽팽한 의견 대립이 짙어지는 양상이다. 교계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어 이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사형 제도를 둘러싼 교계의 입장과 실상 등을 살펴본다.
미국 사형제 변천사 및 실상연방법무부는 올해 12월9일부터 6주간 연방사형수 5명에 대한 사형 집행을 결정한 상태다. 미국에서는 14개주에서 사형을 집행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23명이 처형됐다. 하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사형 집행은 2003년 사형 집행 후 16년만이다.
미국에서는 앞서 1972년 사형 집행이 동결된 후 4년 만에 재개된 바 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4년 사형과 독극물 주사제 관련 문제 검토를 법무부에 지시하면서 사실상 사형 집행이 동결돼 왔던 상황이다. 법무부는 관련 검토가 완료돼 사형 집행 재개가 가능해졌다는 입장이다.
현재 미국의 연방사형수는 62명이고 이중 1명이 여성이다. 인디애나 감옥에 대부분 수감된 연방사형수 중에는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을 일으킨 조하르 차르나예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흑인교회 총기 난사범인 딜란 루프 등이 있다.
처벌보다 생명 아끼는 마음으로사형 집행 재개 발표 직후 보수적 성향이 강한 가톨릭의 반대가 가장 거세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역사적으로도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처형한 끔찍한 아픔이 많았고 범죄 피해자 가족 위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역사와도 깊이 연관돼 있어 그만큼 결함이 많은 제도라며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1976년 이후 전체 사형수의 43%, 현재 사형수의 55%가 유색 인종 또는 저소득층이다.
사법정의 회복과 사형제도 반대에 힘써온 대표 단체인 ‘가톨릭 모빌라이징 네트웍’은 “사형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을 가리는 것이자 복음적이지도 않다”며 “생명 존중을 명분삼아 낙태를 반대한다고 스스로 천명한 트럼프 행정부가 사형 집행을 재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형제도 폐지를 꾸준히 주장해 온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가톨릭교회의 교리문답서 개정을 지시하며 사형을 인간의 존엄성 및 신성불가침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시토록 했다. 앞서 2015년 연방의회 연설에서도 의원들에게 사형제도 폐지에 힘써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사형수 처형이 정의 구현의 방법이 아니기에 충분히 죄 값을 치를만한 대체 방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일부 개신교는 사형제도 지지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일부 복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오히려 사형제도 찬성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국 4만5,000여개 교회를 대표하는 협의체인 ‘전국 복음주의 협회’는 양심에 입각한 기독교인의 윤리적 사고에 따라 사형제도에 대한 남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며 2015년부터 꾸준히 지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도 희생자와 가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법체계에 의해 부과된 형이 이행돼야 마땅하고 공정한 절차와 배심원 판결을 거쳐 유죄 판결을 받은 최악의 범죄자들을 사형으로 처벌한다며 당위성을 앞세웠다.
반면 초교파로 구성된 종교 시민 그룹인 ‘텍사스 임팩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해 개신교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는 형국이다.
성직자 동행권 보장도 논란거리사형제도 찬반 논란과 더불어 사형 집행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성직자와 동행할 수 있는 죄수들의 권리 보장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연방대법원은 수감 도중 불교에 귀의한 텍사스의 한 사형수가 불교 성직자의 사형장 동행을 거부당한 후 제기한 소송에서 올해 4월 결국 사형수의 손을 들어줬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성직자만 사형 집행장까지 동행을 허용했던 텍사스는 판결 이후 모든 종교 성직자의 동행을 불허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이에 앞서 올해 2월에는 앨라배마의 한 사형수가 이슬람 교단의 성직자인 이맘을 사형장까지 동행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연방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에서 결국 거부당했다. 기독교만 허용하는 규정 때문에 차별 받았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사법기관의 이중 잣대가 논란이 됐다.
교계는 이를 두고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옆에 함께 매달린 강도를 구원했듯이 법 집행보다는 사형수들의 종교적 권리를 우선 보장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죄 행위로 시민의 권리는 박탈당했더라도 인권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며 사법당국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고 있어 향후 어떤 변화가 뒤따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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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