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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의 팝송산책] 영원한 라디오맨 선성치씨 (5)

2019-08-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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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로부터 시작한 그의 방송 인생은 디스크 쟈키로 변신했고 그 후 프로듀서를 걸쳐 모든 방송 업무를 경험한 후 문화방송 FM 라디오 방송 개국에 참여했고, 서울 교통방송 개국에 진두 지휘를 했었고 서울방송 SBS 개국 제작국장으로 재직하였다. 팝 음악 디제이, 프로듀서로 20년간 봉사한 그의 방송 이야기를 들어보자.

- 한때 최동욱씨, 이종환씨와 함께 한국 방송 디제이를 이끌어온 선구자 역할을 했는데 ?

▶앞서 언급한 두 분은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했지만 나는 한강 이남 지역인 대전, 대구에 근거지로 하여 팝 문화 보급에 전념했다. 1960년대는 팝 문화의 골든 에이지 시대라 아름답고 좋은 음악이 풍부하여 일하면서도 큰 보람을 느꼈던 시대였다. 팝 역사상 이때만큼 명품을 대량 생산 한적은 없는 것 같다. 너무 좋은 음악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많은 음악 중에 선곡하는 것이 어려운 일중에 하나였던 것 같았다.


- 그 당시엔 음반 수입이 자유롭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입수했는가 ?

▶그 문제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국의 공동 과제였다. 특히 최신 팝송을 소개하는 프로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타 방송보다 먼저 방송을 타야했기에 스피드 싸움의 연속이었다. 저의 경우는 AFKN(한국에 주둔하는 미 병사들의 위한 방송국)국장을 접촉하여 2주마다 미국의 최신 유행 음악 탑 40곡을 제공 받아 방송했다. 이것은 하나의 큰 혜택이었는데 미국의 최신 음악을 한국에서 동시에 방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 당시 팝 음악 방송 디제이 중 가장 매력있는 목소리의 소유자이며 또한 영화 배우 못지 않은 깔끔한 용모를 지녀 마치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팻 분’과 닮아 한국의 ‘팻 분’이라고 애칭을 가졌는데 ?

▶허허(웃음)... 그때의 인기는 대단했다. 대구에 있는 음악 감상실 카네기에서 탑 40팝송을 소개 할 때는 대전, 부산 등지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당시엔 음악 팬들이 최신 미국의 팝송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잘 맞은 것 같다. 봄철 신학기 대구 효성여대에서의 팝 음악 특강에는 강의실이 터져나갈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으며 이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팝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 한국 최초로 MBC 팝송 팬 클럽을 조직하여 활동 했었는데 그 이유는 ?

▶그 시절엔 팝 음악에 대한 정보, 재원 또는 레코드 구입 어려움 등의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서로 교류가 필요했다. 따라서 MBC 방송국에서는 팬들 간에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 할 수 있도록 매체 역할을 했다. 팬 클럽이 창단 되자 마자 반응은 매우 좋아 보람을 느꼈다.

- 방송은 7 가지 무지개 빛 이라고 언급 했었는데 그 의미는 ?


▶방송에는 우리의 희,노,애,락, 그리고 꿈이 투사돼 있다. 우리들 개개인이 꿈꾸는 피안,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주는 무한한 유토피아 세계의 꿈, 무지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 그 동안 방송에 대한 여러 정보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팝 음악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노래 5곡을 선정한다면 ?

▶ ‘Nana Mouskouri’의 Even Now‘, Susan Jacks 의 ’Ever Green, ABBA 의 ‘The Day Before You Came’, Carol Kidd 의 ‘ When I Dream’ 그리고 Al Martina 의 ‘ I Love You More And More Ever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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