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새로운 무엇을 (Something New)추구하는 그에게 교통방송이라는 새 과제가 생겨 그는 이것과 함께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 갔다. 대구 문화방송 편성국장으로 근무 하던 중 서울 경찰청으로 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교통방송 개국 총괄 제작 국장으로 취임하여 1990년 6월 11일 세계 최초의 교통방송을 탄생 시키는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 세계 어느 나라도 없는 교통 방송을 세게 최초로 개국하게 된 얘기를 듣고 싶다.
▶한국이란 나라 자체가 도로는 제한적이고 자동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빨리 빨리 근성이 강한 한국 사람에게는 줄서기 문화, 기다리는 문화가 익숙할 리 없다. 차 안에서 기다리는 체증문화를 조금이나마 완화해보려는 아이디어가 교통방송을 탄생시켰다. 자금 조달과 조직인원은 모두 서울 경찰청에서 담당했다. 지금과 같이 네비게이션이 없던 그 시절, 교통 소통
문제는 전적으로 경찰에 의해서만 통제 조정 되던 때이다. 출 퇴근 러쉬 아워가 되면 서울 시내 곳곳 변화가 네 거리에는 경찰순찰대(모터 사이클 경찰)가 거리에 나와 교통소통을 위해 상황실에 실시간 소통정보를 무전으로 제공한다. 경찰청은 이점에 착안해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사상초유의 교통방송을 설립하게된다.
- 정부 허가 상황이나 그 외에 준비는 어땠는가?
▶우선 정부로 부터 방송 타당성을 인정 받았고 지금의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위치한 경찰청 순찰대 건물내에 교통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6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걸쳐 1990년 6월 11일 FM 호출번호 95.1 MHZ 출력 5 Kw 의 TBS 교통방송을 개국, 24시간 종일방송을 시작하여 하여 세계 최초의 교통방송이 시작됐다.
- 교통 방송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면 우선 수 백명의 통신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 했는가 ?
▶서울 경찰청에는 약 400명의 모터 사이클 교통 경찰이 그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초창기 부터 순조롭게 방송을 진행 할 수 있었다. 간단한 방송 통신 교육을 수료한 그들은 순찰 업무를 하면서 통신원 역할을 잘 소화 했다.
- 그들은 방송 통신원이란 전문 지식도 없는데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
▶물론 그들의 언어 전달이나 방송 진행 솜씨가 매끄럽지 못했지만 순박하고 꾸밈없는 매너가 오히려 반응이 좋았다. 특히 투박한 발음은 오히려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어 청취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세련된 통신원 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그들의 덜 세련된 스타일이 한층 더 현장감을 느끼게 해준 것 같았다.
- 개국 전에 청취율은 어느 정도 예상 했는가 ?
▶사실 이렇게 성공 할 줄은 예상 못했다. 교통방송이란 포맷으로 처음 시도하는 방송 시스템이라 기대반 우려반으로 시작했다. 모든 준비가 무에서 시작하는 일이라 모든 것이 모험적인 일이었다. 방송 초창기 부터 청취율은 예상 밖으로 모든 라디오 부분에서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했다.
- 새로운 포맷을 과감하게 시도 했었는데 ?
순찰대원들이 거리의 교통정보를 상황실에 보내오면 그것을 분석 정리해 스튜디오를 거쳐 차량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어떤 정보든 Spot 개념을 넘어 길어지면 외면하는 라디오 청취자들의 특성을 십분고려해 요점만 짧게 신속히 전달하는 진행자와 통신원의 재치가 요구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음악이라는 강물에 정보라는 배를 띄운 거다. 음악은 한국이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트로트 가요(뽕짝) 만 취급했다. 이 방송을 타고 트로트 가수로 성공한 가수들이 많았었다.
- 지금은 운영권이 서울시청으로 넘겨간 걸로 알고 있는데 ?
▶경찰 인력 활용문제와 예산문제 등으로 경찰이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서울시청으로 넘겨졌다. 교통방송의 성공으로 지금은 대부분 대도시에는 교통방송이 운영되고 있다. (계속)
<
정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