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타고니아 여행기 ⑦속살 드러낸 거대한 파이네산 위엄 가슴으로 느껴

2019-07-19 (금)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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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약도 안하고 막무가내로 캠핑장 찾아가 숙박 허락받아

▶ 빙하녹아 흘러내리는 물소리 마치 파도소리 같아

파타고니아 여행기 ⑦속살 드러낸 거대한 파이네산 위엄 가슴으로 느껴

세상 모든 대륙 중, 위도 상으로는 최남단에 있는 섬의 제일 남쪽 끝에 서 봤다.

파타고니아 여행기 ⑦속살 드러낸 거대한 파이네산 위엄 가슴으로 느껴

수많은 등산 길을 걸어 봤지만, 프랜시스 밸리의 등산길은 물에 젖은 농구공 같은 사이즈의 차돌뱅이 돌들을 쏟아부어놓은 듯한 길은 처음이었다.<사진 왼쪽) 솜털 같은 눈이 빙하가 되었다가 오랜 세월 후에 녹아서,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계곡 위의 갸날픈 다리는 2명이상이 동시에 걷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W트랙 프랜시스 밸리는 온통 돌덩어리 돌밭
암석 바위 밑에서 정상 올려다 볼 때 숨막히는 압박감이

<2018년 12월30일>
새벽 5시에 동이 튼다. 백야 현상 때문에 이 시간도 환하다. 나가보니 벌써 텐트를 걷는 애들,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애들도 보인다. 모두 다 애들이다. 내 딸,아들 또래 젊은이들.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찾아 볼 수가 없다. 내가 유별난가 싶기도 하다. 촌놈이 서울 간다면 마음이 들뜨듯이 토레스델 파인 트레일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걸으면서도 하루 종일 흥분 상태다.


일찍 일어나서 누룽지 라면을 끓여 먹고 다시 이탈리아노 캠핑장까지 18km를 걸었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아내는 자꾸 휘청거린다. 등산 스틱에 의지하며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도착은 저녁 8시. 좀 일찍 도착했는지 이번엔 캠핑장 밖에서 파크레인저를 만났다. 그에게 예약을 못 했는데 하루 밤 자고 갈 수 있냐고 했더니 예약을 안 했는데 왜 왔냐고 따지듯이 묻는다. 난 속으로는 ‘답답한 놈’ 같으니 라고. 나는 단순하게 그냥 오고 싶어서 왔을 뿐이고, 비행기 표는 끊었는데, 예약이 안 되어 그냥 왔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못 자게 하면 나는 길을 떠날 것이고, 밤이 깊어지는데 여기서 출발했다가 사고가 나면 너희들도 편치 않을 거라는 뱃짱을 갖고 이야기를 했다. 할 테면 하라는 똥배짱인 셈이다. 그랬더니 다시 예약도 없이 왜 왔냐고 같은 소리를 또 묻는다.

나도 할 말은 없었지만 그 친구도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는지 같은 소리를 또 한다. 우문현답이라고 나도 그냥 웃으며 “여기가 좋아서 왔다”고 했더니 저도 웃는다. 피차 따질 상황도 아니다. 예약이 되든 안 되든 무대포로 온 내가 웃기는지, 저도 웃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와서 그냥 아무 데나 텐트를 치라고 한다. 나는 반갑고 고마워서 캠핑장 사용료를 내려고 했더니 내가 예약을 안 했기 때문에 요금은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예약을 하면 돈을 받고, 안하고 그냥 있다 가면 돈을 안 받는다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냥 캠핑장에 하루 있을 수 있다고 하니 무척 반가웠다. 나라고 예약을 못하고 와서 속이 편했겠는가. 속으로는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어찌 이런 행운이 있을까 싶다. 나는 다시 믿는다.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은 나를 내팽개치지 않고 항상 나를 보살펴 준다는 것을. 막상 부딪히고 보니까 길이 있다는 것. 오늘까지 2주간 칠레에 머물면서 느낀 것은 칠레 사람들이 괜찮다는 것. 돈을 안 받아서 그런 게 아니고, 사람들이 순수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캠핑장 사용료가 8달러밖에 안 되지만, 그의 마음씨가 참 고마웠다. 이래서 칠레 사람들이 좋아져 버렸다.

<2018년 12월31일>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난 다음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캠핑 하면서 제일 심란스러운 것은 비가 오는 날, 텐트 안에 있는 것이다. 얇은 텐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하나마다 톡, 톡, 톡 소리를 내며 텐트를 친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불어 대며 텐트를 펄럭 거리면 어지간한 사람은 심란해서 잠을 깊이 잘 수가 없다. 다행히도 나는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자는 사람이라, 잠자는 은혜(복)는 충만히 받은 사람이다. 바람 부는 산길을 배낭 메고 18km를 걸으니 보통 피곤한 게 아니다. 아내는 몸살기가 있다 하여 누룽지 끓인 물만 한 컵 마시고 타이레놀을 먹고 잠이 들었다. 힘들었는지, 자면서도 계속 아픈 사람처럼 신음 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초봄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 텐트 안이 싸늘해서 갖고 온 방한복까지 껴입고 누웠다.

밤새 옆 계곡에서 계곡물 소리가 탱크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흐른다. 거대한 빙하가 바로 산꼭대기에 있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이 그야말로 나이애가라 폭포물처럼 웅장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린다. 동이 틀 때까지 계속해서 바람이 텐트를 흔들어 댄다. 텐트 안이 환해지고 빗방울 떨어지는 게 점점 줄어든다. 계속 계곡물과 바람 소리가 강풍 부는 바닷가에서 파도 밀려오는 소리를 내고 있다.

캠핑장을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처럼 원시 상태의 캠핑장은 처음이다. 이곳은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자신이 갖고 돌아가야 되는 게 원칙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숲 속에서 자다 일어나 텐트 밖에 있는 불도 없는 100년 전 원시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다. 화장실이란 것도 옛날 한국의 깊은 산 속 절간의 뒷간 같다. 새벽에 잠이 깨어 이 글을 쓰면서 동이 트니 어쨌든 좀 마음이 놓인다. 오늘은 W 트랙 중, 중간 지점인 프랜시스 밸리(Frances Valley)윗부분 까지 6시간 쯤 걸려서 갔다 와야 된다. 가는 길이 전부 바위라서 배낭 중 한 개는 캠핑장에 두고, 간단한 음식만 갖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도 험하고 산행 시간도 줄여야 하기에 간식, 카메라와 비상약품을 (산에서는 언제나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비상 약품과 붕대)갖고 출발 했다. 산길은 모두 돌덩어리들이다. 농구 공, 배구공 같은 돌덩어리 돌밭이다.

산길을 많이 걸어 봤지만, 이렇게 가파르고, 빙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때문에 돌들도 물기에 젖어 반질반질 하고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한걸음 한걸음이 위험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브리타니코의 눈부신 산세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그러기에 세상 모든 트레커들이 여길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토레스 델 파인 에서도 제일 경관이 좋다는 이 곳. 황홀한 하늘 빛깔도 내가 오래 동안 꿈꾸던 것들이 아니던가.

텐트 안으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장마철 소리인데 햇살은 맑은 날처럼 텐트 안을 환하게 해 준다.


사진으로만 보고 감탄하던 눈앞에 있는 파이네 산. 이 산은 꼭 거대한 곡괭이로 산 중턱을 한방에 찍어 내려서 파인 것처럼 산의 반절 정도가 깎여 나간 산이다.

작년에 간 에베레스트는 너무 높아 땅에 있는 게 아니고, 하늘에 매달려 있는 산이라고 생각할 만큼 굉장했는데 파이네 산도 누가 저렇게 반 토막을 냈을까 싶은 신기한 자태를 갖고 있다. 산의 속살이 다 보일 만큼 크게 절단이 난 거대한 파이네 산의 매력과 위엄. 어제 이 산의 밑 왼쪽부터 오른 쪽까지 하루 종일 걸으면서 이 산 밑에서 걷는 것이 행복했다.

아내가 나에게 하는 “참 못 말리게 유별나다”란 말. 맞다. 유별나기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것이다. 여기 온 것은 여행도, 관광도 아니다. 그냥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 2018년 12월 31일>
오늘은 이탈리아노(Italiano)에서부터 18km를 걸어서 라스 토레스(LasTorres) 까지 가야 한다. 뉴욕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모레까지 끝내려면 오늘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어제는 비를 맞고 걸었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기를 기대해 본다. 이탈리아노에서 출발 할 때부터 날씨 조짐이 별로 좋지 않다. 5km를 걷다가 라스 쿠에모스(Los Cuernos) 산장에 들려서 물어보니 라스 토레스까지 갈 때까지 비는 계속 오고, 바람도 많이 불 것 같다고 한다.

어쩌랴, 비옷을 챙겨 입고 걷기 시작했다. 다음 산장까지 6km를 비 속에서 걸어야 한다. 아내는 걷다가 바람에 밀려서 자꾸 넘어 질듯이 휘청거린다. 내가 뒤로 빠짝 붙어서 내 등산 스틱을 양쪽으로 벌려서 몸 양쪽을 커버해 주며 한 발자욱씩 간신히 걸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바람에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걷기를 3시간이다.

관광과 여행, 산에 간다 하는 것은 내 경험으로는 그곳을 보러 가는 게 아니고, 느끼러 가는 거라 생각을 한다. 산 중턱에 있는 폭 좁은 산길을 걸으며 내려다보는 탁 트인 시야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사실은 온 몸으로 오금을 저리며 보는 것이다. 내 몸뚱이가 거대한 암석 바위 밑에서 산 정상을 올려다 볼 때는 눈이 아니고, 가슴에 와 닿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다. 그것은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즐긴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산 위 빙하를 흩고 내려오는 찬바람이, 내 몸 안으로 불어 들어올 때의 그 냉기는 내 몸이 빙하 시대에 내가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걷는 길 바로 옆으로, 반 발자욱 만 잘못 내디디면 모든 것이 끝나는 낭떠러지는 온 몸으로 전기 감전이 되면 느낄 것 같은 전율과 발바닥부터 올라오는 짜릿한 무서움,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잘 걷고 있는데도 순간적으로 센 바람이 불어서 내 몸을 저 절벽 밑으로 밀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튼튼한 허벅지마저 힘이 빠지고, 저리는 긴장감. 위기감 같은 걸 실제로 온 몸으로 받아내기 때문에 여행은 뭘 보러 가는 게 아니고, 몸 전체의 오감을 다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짜릿한 여행이 좋다.

이곳은 비가 오면 내린다 하기보다. 비가 때린다고 하는 게 맞다. 워낙 바람이 세니 비가 위에서 아래로 오는 게 아니고, 옆으로 수평으로 야구공처럼 날아온다. 이런 비를 직접 맞으며 넘어지려고 하는 걸 견디며 걸어야 파타고니아의 참 맛을 체험하는 것이다.
산길을 오르면서 산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걸터 앉아 있는 거대한 바위 (암석)덩어리를 봤다. 산 정상에서 굴러 내려오다 왜 저기서 멈춰 서있을까 싶은 그런 멈춤.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겠지만, 내가 지나갈 때는 굴러 내려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날 정도로 위태롭게 걸쳐있었다.

W 트레킹의 3개의 산. 그 중에 Paine Grtande Hill, Frances Valley,Torres Del Paine이 서로 연결 되어 있어 그 밑에서 며칠간 빙 돌아가며 걷다가 3개의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것. 거대한 빙하가 녹아 산 여기저기서 폭포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산길을 걷는 동안 곳곳에서 내려오는 자그마한 물줄기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난다. 그 물은 어느 지점에서 마셔도 전혀 오염이 안 된 빙하 물이다.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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