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⑥ 우뚝 선 빙하와 산봉우리 웅장함 앞에서 숨 멎어

2019-07-12 (금)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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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트렉은 하루에도 사계절 다 겪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

▶ 파타고니아 자유여행은 정해진 일정보다 차편따라 움직여야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⑥ 우뚝 선 빙하와 산봉우리 웅장함 앞에서 숨 멎어

자연은 눈으로 보기보다 몸으로 느끼는 게 제대로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⑥ 우뚝 선 빙하와 산봉우리 웅장함 앞에서 숨 멎어

나무들이 수평으로 자란다할 만큼 바람이 세다. 제트 엔진 뒤에다 나무를 심으면 저렇게 자랄 것이다. 이런 바람을 뚫고 매일 18km를 걸으면서 날아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건 지구 중력 때문인가? 내 몸무게 때문인가 모르겠다.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자연 속에서 경이로움 절로 느껴
파워 레인저 캠핑장은 도 닦는 절간 같은 정적 흘러

<2018년 12월27일>
9일간의 항해가 끝나고 아침에 Punta Arenas에 내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다시 정리해서 배낭을 준비했다. 여행사를 통하면 캠핑 장비를 준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는 줄겠지만, 예약을 못한 상태로 W 트렉을 끝내려면 배낭이 과연 내가 메고 일주일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물론 내가 무게를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짐만을 꼼꼼이 쌌는데도 어깨에 들어올리기가 벅찰 정도로 무겁다. 하루에도 4계절을 다 겪을 수도 있는 트레킹 코스이고, 날씨 변화가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모든 경우를 대비해서 짐을 쌌다. 산장에서 사 먹는다 해도, 캠핑장에서 먹고 자고 해야 되기 때문에 두 사람 몫의 Dry Food, 취사도구와 연료, 간식 등을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곳곳에 빙하 녹는 물을 그냥 마셔도 된 다니까, 물은 짊어지고 다닐 일은 없다. 그 점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어떤 성황이 벌어질지 예상은 못 할 일이다. 비행기 표를 예약 할 때부터, 항해를 하면서도, 토레스 델 파인(Torres Del Paine)을 간다는 기분으로 거의 들뜬 상태였다. 내일부터 세상의 모든 트레커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에 가서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내 젊은 마음도 고맙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을 수 있는 내 어깨와 허벅지, 장딴지가 이리 고마울 수가 없다. 또 아무 예약도 못한 상태로 대책 없이 길을 떠나는 무모한 용기도 대견하다.

<2018년 12월28일>
푼다아레나스에서 토레스 델 파인 입구까지 버스로 끝도 없는 넓은 광야를 4시간 쯤 달린다. 거리는 300km. 그만큼 골짜기에 있다는 장소. 한참 겨울인 뉴욕에서 24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이곳은 한여름이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어려움은 워낙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데 예약도 어렵고, 교통편도 원할 하지 못해 스케줄 맞추기가 어렵다. 여행사를 통해서 오면 편하고 좋긴 하다. 그런데 여기 와서 여행사가 움직이는 동선을 보니, 어지간하면 여행사 통해서 올 곳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용이 비싼 것은 그렇다 쳐도, 꼭 봐야 될 곳은 일반 관광객에겐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인프라도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니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는 힘들어도 내 다리로 직접 걷고 봐야 되기 때문에 체력이 될 때 가 봐야 되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은 눈으로 보기보다 몸으로 느끼는 게 제대로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자유여행, 히치 하이킹하다>
파타고니아에서의 자유 여행은 정확한 일정을 정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은 오고 가는 시간과 관광 일정을 정하고, 시간만 제대로 내가 맞추면 원하는 대로 다녀 올 수 있다. 이곳은 현지에 있으면서 차편을 봐 가면서 계획을 해야 된다는 점이다.

트레킹을 시작 하려면 그레이(Lago Grey) 동네에 도착해서 캠핑장 입구 까지 가서 그레이 호수를 건너는 페리를 타면 된다. 그게 안 되면 어느 들녁에 텐트 치고 자면 된다는 마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 속으로 걱정은 되지만, 아내도 같은 의견이다. 배낭 안에는 텐트도, 버너도, 연료도 있겠다. 먹을 것도 충분하고, 날씨는 섭씨 15도 쯤 되니 침낭 안에서 자도 춥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는 자연 속이고, 몸으로 자연을 느끼러 왔기 때문에 땅바닥에서 자도 어차피 우리 여행 스타일과도 맞기에 어딜 가서 자든 그게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매표소에서 국립공원 입장권을 구매하고 그레이 동네를 가려고 하니, 버스가 끊겼다고 한다. 시골 골짜기에서 목적지까지 가긴 가야 되겠는데 할 수 없이 히치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평생 처음으로 배낭을 도로 옆에 세워 놓고 손을 들어서 지나가는 차마다 태워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너무 시골이고, 저녁 무렵이라 지나가는 차도 없다.

몇 대 승용차는 그냥 지나가더니 얼마 안 가서 픽업 트럭이 우리 앞에 섰다. 그레이까지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거길 간다고 한다. 배낭을 적재함에 올리고 가면서 물으니 라고 그레이 호텔 근무자다. 딱 하나 있는 호텔인데 비싸다고 한다. 아마 예약이 많아서 방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방이 있든 없든 호텔이란 게 있다는 자체만이라도 감사 할 일. 곧 저녁이 되어 가는데 차도 안 다니는 시골에서 어찌 되었던 차를 타고 호텔 쪽으로 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예감은 좋다. 고마워서 내릴 때 팁을 주니 안 받으려고 한다. 그래도 고마워서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칠레를 다니면서 이 나라 국민성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약간은 한국인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존감이 남미 어느 나라보다 많다는 것. 나를 태워준 운전수만이 아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예약을 안 했는데, 방이 있냐고 물어보니 한 방이 취소해서 Superior방이 하나 남았다고 한다. 선택의 여지도 없는 지라, 그 방을 택해서 들어갔다. 돈이 아까웠지만, 평생 처음 하루 밤에 420달러짜리에서 자 봤다. 오늘 제대로 자고 나면, 내일부터는 보나 마나 아주 고단한 나날들이 계속 될 테니 오늘 하루라도 제대로 몸을 쉬게 하자는 생각. 그나마 방이 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초장부터 어찌했을까 생각하니 감지덕지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드디어, 오래 동안 기다리고, 목 메이던 토레스 델 파인을 걷기 시작했다. 바람은 세었지만, 그리 춥다는 생각이 안 든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거대한 산봉우리들, 옛날 임금 앞에 엎드려 있는 백성 같은 경이로운 마음으로 그 산들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 강하게 불러오는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몸은 우리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 하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바람이 만나는 파타고니아. 그 바람 속에 우뚝 선 빙하와 산봉우리 들. 그 웅장함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어찌 위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싶다. 도저히 글로 표현이 안 되는 자연의 웅장함 앞에 서 있는 작은 몸뚱이 안에서는 숨도 쉴 수 없는 감격이 출렁인다. 이 땅에 나그네처럼 왔다가면서, 마음 속에 무엇을 담아 챙겨 가겠는가. 이런 감동과 감격, 그리고 단지 지금 만들어 놓은 이런 추억과 경험 뿐 이리라. 그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생각 한다. 지금 이 태양 빛, 바람, 빙하들이 나중에 더 나이 먹어 삶을 되새김질만 하고 살아야 될 나이가 되면 사는데 많은 힘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재산을 축적하려면 지금 부지런해야 한다는 게 억지일까 배낭의 내용물을 줄이고 줄였는데도 55가지 품목이다. 아주 작은 품목을 넣어도 55가지라면 어디 이사 가려고 챙기는 이사 짐 목록이다. W 트레킹은 모양이 W이지만, 펼치면 일직선 길이다. 한쪽에서 시작하면 되돌아가던가 아니면 끝까지 가던가 하는 선택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길이다. 중간에 내려 설 길도, 동네도 없기에 돌아 올 수도, 돌아 갈 필요가 없는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되는 그런 트레일. 모든 걸 짊어지고 다니면서 먹고 마시면서 무게를 줄여나가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는 것. 이 땅은 지금 여름 시즌이지만, 하루에 4계절을 다 겪고, 거기다가 바람까지 5계절이라 할 정도로 기후 변화가 심한 곳이라 해서 가을과 겨울옷, 그리고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한 우비까지 필요한 건 모두 배낭에 담고 걷는다.

<2018년 12월29일>
아침 일찍 페리를 타고 W트렉의 시작점인 그레이산장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파크 레인저가 있는 건물을 못 본 척 하고 그냥 통과해서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지체하면 우리가 도착해서 하루 자야 될 파인 캠핑장에 밤까지 도착하기가 힘들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파크 레인저가 건물 안에 있어서 그런지, 우리를 보지 못 했다. 쉽게 말하면 경비 초소를 못 본 척하고 시치미 뚝 따고 지나친 것이다.

내가 원하는 트레일로 들어왔으니 이제부터는 캠핑하는 건 내 소관이다라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 쪽에서 말하면 바쁘고, 가야 되니까 그냥 통과 한 거고, 저쪽에서 보면 허가 없이 산행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입장권은 끊었지만, 예약은 안 한 것이니까. 18km를 10시간 쯤 걸어서 밤 9시에 페오에 산장에 도착 했다. 늦은 시간에 파크 레인저가 누가 오나 안 오나 밖에 나와서 쳐다보지는 않을 것이다.

또 이 시간에 텐트 친다고 법석 피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조용히 캠핑장으로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라 텐트들도 조용하다. 나도 조용히 일단 빈 터를 찾아서 빠른 속도로 텐트를 쳤다. 출발하기 전에 우리 집 리빙 룸에서 빨리 텐트 치는 연습을 해 봤기 때문에 3분 정도에 텐트를 치고, 모든 배낭을 텐트 안에 쑤셔 넣었다. 군대 말로 치면 적진 안에 잠입 성공. 일단 텐트 안에 들어앉아야, 혹시 파크 레인저가 지나가다 봐도 이게 있던 텐트인지, 새로 생긴 것인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기야 고만 고만한 텐트들을 매일 설치하고, 걷고 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헷갈리는 법이다. 내가 물 뜨러 갔다 와서 내 텐트를 찾는데도 헷갈리는 판인데, 수많은 텐트 중에 하나가 늘었든지, 줄었든지 모를 일 아닌가. 물론 텐트 칠 자리가 있는데도 무제한 예약을 안 받는 이유는 화장실이나, 부대시설 사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 걸 나도 잘 안다. 환경을 위해서, 좋은 캠핑장을 위해서라면 그래야 된다. 텐트에 들어 앉아 배낭을 풀고 누룽지를 끓였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이곳까지 오느라 아침만 먹고 걸으면서 쿠키로 버텼으니, 속이 편안한 누룽지와 숭늉으로 속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누우니 이렇게 감개무량 할 수가 없다. 드디어 파타고니아의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누웠다. 감격스럽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녀 본 캠핑 장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보통 캠핑장은 어두워지면 시끄럽고, 밤늦게 까지 술 마시는 소리,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데 여기는 무슨 도를 닦는 절간 같이 정적이 흐른다. 트레커 도사들만 와서 그런가, 각자 텐트 안에서 침묵 수행이라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적막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허겁지겁 텐트 치는 동안 모기한테 눈두덩이를 한방 쏘였는지 눈언저리가 한대 쥐어 박힌 것처럼 퉁퉁 부었다. 보톡스 주사를 맞은 것 같이 눈이 짝짝이 되어버렸다.

텐트에 누워있으니 밤새도록 부는 바람 소리가 꼭 폭풍우가 내리는 소리 같다. 두사람이 누우면 텐트 안이 꽉 찬다. 이왕 사는 것, 무게가 나가더라도 좀 넓은 걸 살 걸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짊어지고 다니는 집이 크면 나만 고생이지 하는 마음을 먹었었다. 좁아도 좋다. 꿈꾸던 땅에 와서 걷고, 텐트치고 누워있으니 이렇게 행복 할 수가 없다. 파타고니아가 다 내 땅 같다. 비록 파크 레인저 모르게 텐트를 치고 누웠지만. 이런 짓도 젊을 때나 하는 거지 나이 들면 하겠는가. <계속>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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