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팝송산책] 영원한 라디오맨 선성치씨<2>

2019-06-21 (금)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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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없이 사랑한 선성치씨는 그저 음악이 좋아 라디오 제작부에서 30년 이상을 청취자를 위해 봉사했고 지금은 라디오를 떠나 있지만 여전히 음악과 방송을 사랑했던 그의 열정은 영원히 라디오와 함께 있다. 그에게 라디오 초창기 역사를 들어보자.

- 아나운서 전성시대에서는 주로 어떤 역할을 아나운서들이 담당 했었나 ?

▶ 그 당시에는 오락 프로나 예능 같은 프로가 없어 아나운서들의 주 역할은 뉴스나 공개 방송 진행을 담당했고 각종 스포츠 중계를 담당했다. 그 중에서 가장 각광을 받은 아나운서들은 스포츠 중계 담당자였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바리톤의 음성 소유자인 임택근 아나운서와 하이 톤의 목소리로 빠른 템포 터치의 소유자인 이광재 아나운서가 가장 인기 있었던 시대였다. 특히 해외에서 중계할 때 “고국에 계신 여러분 여기는 상하의 나라 .....”로 시작하는 이광재 아나운서의 전매 특허의 멘트는 폭발적인 인기였다.


- 요즈음 한국의 TV 드라마가 특히 동남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한국 드라마 초창기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 한동안 한국은 드라마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TV 드라마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각 방송국마다 경쟁력으로 제작에 심혈을 기울었다. 한국 최초 드라마는 1956년 12월 2일 라디오에서 조남사가 대본을 쓴 멜로 드라마 ‘청실 홍실’이 전파를 탔다. 출연 성우는 김소을, 장민호 그리고 정은숙이었다.

내용은 한 남자와 두 여자와의 삼각관계 스토리인데 매주 일요일마다 5개월간 안방을 파고 들면서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향후 드라마 붐을 일으켰다. 송민도와 안다성이 부른 드라마 주제곡인 ‘청실 홍실’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57년 10월 조남사 극본 이보라 연출 시작한 일일 연속극 ‘산너머 바다건너’는 최초의 라디오 일일 연속극 이었다. 그 뒤로 ‘봄이오면’, ‘느티나무있는 언덕’, ‘로맨스 빠빠’, 그리고 ‘현해탄을 알고있다’ 등이 전파를 타고 크게 힛트하여 라디오 드라마가 자리를 잡았다.

- 성우들의 인적 자원은 충분했는가 ?

▶ 다행히 한국 라디오 방송계는 재능있고 뛰어난 성우들이 당시에 많아 인적자원의 어려움은 없었다. 이창환, 이혜경, 남성우, 고은정, 정은숙, 구민 등 쟁쟁한 성우들이 마이크 앞에서 목소리의 마술을 구가한 라디오 전성시대였다.

- 당시에 성우들은 라디오 드라마 외에도 영화에서도 많이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

▶ 그당시 영화 제작은 먼저 화면을 찍어 놓고 거기에 성우들의 목소리를 입히는 시스템이라 제작자들은 당연히 인기있는 성우들을 기용했다. 배우 신성일 영화에는 주로 이창환이 담당했고 엄앵란 영화에는 고은정과 정은숙이 각각 상황에 따라 기용됐다. 영화‘ 맨발의 청춘’을 촬영 한 후 엄앵란 목소리에 고은정을 섭외 했으나 몸이 만삭이라 해산날이 오늘 내일 하는 중이라 고사했으나 영화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목소리 대역을 마치자 마자 바로 집에 가서 해산했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있다. 특히 고은정이는 돈만 주면 3살 어린 아이 부터 부터 팔순 노인네 목소리 까지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사석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 각 방송국들의 라디오 드라마 비중은 어느 정도 였는가?

▶ TBC, KBS, MBC ,동아 방송, 기독교 방송 모두 오후 7시 부터 11시 시간 별로 드라마를 편성해 앞다퉈 경쟁했다. 회당 20분 씩 평균 30회로 계획했고 그 중에서 인기있는 드라마는 영화로 각색되어 만들어 질 정도로 라디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다.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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