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쓸까 말까…아빠 육아휴직

2019-06-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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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육아휴직 후진국이다. 선진국 중 유급 육아휴직제가 국가차원으로 도입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2018년 고용주 서베이에 의하면 출산휴가를 주는 고용주는 약 35%, 유급은 30% 미만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유급 육아휴직을 누릴 수 있는 근로자는 16%에 불과하다.

일부 주정부와 대기업들이 육아휴직제 정착에 적극 나서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주 차원으로는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6주의 유급 육아휴직제를 도입했고, 넷플릭스의 최고 1년과 휼렛 패커드의 6개월을 비롯해 대기업들도 2~16주의 유급 육아휴가를 주고 있다.

미국 1억2,100만명 성인 남성 중 60%이상이 아버지이며, 막내가 6세 이하인 아버지의 90%가 고용된 상태이지만 아빠들의 육아휴직은 엄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기간도 짧고 설사 규정 자체는 ‘성 중립’이라 해도 적용 방법이 아빠에게 불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육아휴직을 택할 경우 불안·압력 등을 느끼게 하는 무언의 시선도 아직은 편치 않은 게 보통이다.


5월 말, JP모건 체이스은행은 육아휴직 차별에 항의하는 아빠 직원들의 집단 차별소송에서 500만달러 지불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소송은 2017년 여성 동료들에겐 허용된 16주 유급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2주 이상은 안 된다고 거부당한 한 남성 직원에 의해 제기되었다.

육아휴직 ‘성차별’ 소송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엔 화장품 대기업 에스테 로더가 200여명 아빠 직원들의 항의에 정책을 변경했고, 2015년엔 CNN도 ‘엄마 10주, 아빠 2주’라는 육아휴직 규정에 대해 한 기자가 제기한 성차별 소송에서 규정변경에 동의한 바 있다.

이번 JP모건의 합의가 경쟁 치열한 월가의 직장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였다고 지난 주말 보도한 LA타임스는 그러나 “새 아빠들에게 육아휴직은 진퇴양난”이라고 지적했다. 그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정책 변경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월스트릿 기업들의 전·현직 직원들이 LA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것은 장기 휴직 동안의 이른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휴직 후 직장 복귀 보장도 불안하고 특히 보너스가 연봉보다 많은 금융기업에서의 장기 휴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한 조사에 의하면 “고용주가 육아휴직을 지지한다”고 믿는 비율은 일하는 모든 아빠들 중 절반이 채 안 된다.

JP모건에서 일했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딸이 태어난 날 오후에 회사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고 털어 놓았고 전 골드먼삭스 트레이더는 육아휴직을 최대한 신청하는 남성 직원은 “사실상 해고를 요청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쓰면 ‘출포남(출세를 포기한 남자)’이 된다는 한국보다는 좀 덜하겠지만 미국에서도 아빠의 육아휴직을 선호하지 않는 게 아직은 기업 내 문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빠들은 장기 육아휴직을 택하지 않고 또 그것이 남성들이 출세의 사다리를 더 빠르게 오르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제한 한 여성 뱅커는 여성에게 평등한 직장을 위해서라도 남성에게 평등한 육아휴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직 후에도 승진이 보장되고 고위직도 육아휴직을 가는 등의 분위기에서 육아휴직이 적극 활용되는 회사들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쓸까, 말까…고민하는 아빠들이 훨씬 많다. 아빠 직원들에게 육아휴직이란 아직 ‘얻기보다는 쓰기가 더 어려운 혜택’ 인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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