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버스에 올라탈 때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이제 또 언제 보겠냐?”며 흐느끼셨다. 짧게 함께 머문 동안 참았던 눈물을 엄마는 더 누르지 못하고 마침내 쏟아내셨다.
아빠가 두 달여 전에 세상을 떠나신 후 엄마는 부쩍 자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혼자라는 뼈저린 외로움을 떨치지 못하시는 듯했다.
“또 나오겠다”는 언제가 될지 모를 기약을 남기며, 나는 내 팔을 붙드신 엄마 손을 떼어내고, 더 심하게 우실까봐 한번 안아드리지도 못하고 등을 돌려 버스에 올랐다. 손수건으로 눈을 감싼 엄마를 창 너머로 뒤로하고 차는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된 두통은 비행기를 타고부터 점점 심해져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렌치로 내 두개골을 조여 와 곧 터질 것 같은 통증이었다. 승무원에게 두통약을 부탁해 먹고는 잠을 청했다. 13시간 비행 동안 대부분 자는 사이 비행기는 어느덧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론토 공항에 착륙한 후 활주로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게이트의 다른 비행기가 지연되어 그렇다고 했다. 미국으로 환승하는 절차를 밟으려고 공항에 들어가니 끝도 없이 늘어선 여권조사 줄에 서라고 했다.
그 줄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서 있는데 한 아시안 여성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왔다. 내 앞의 금발 여자와 나 사이를 조금씩 비집더니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왜 새치기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고 쫓아야 할까,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이 여성을 흠잡으면 내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닐까, 줄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고민이 더해졌다.
잘못된 행위를 보고 침묵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도둑질한 장발장을 신부가 감싸주었듯이 무언가 사연이 있어 새치기했을 수 있을 그를 너그러이 받아주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머릿속이 점점 뜨거워졌다. 내 앞에 당당히 선 그를 그냥 편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에게든 너그러운 것이 낫다.’
내 차례가 되어 출입국 조사관 앞에 서서 글로벌엔트리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몇 달 전에 미국 입국 때 긴 줄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글로벌엔트리 신청을 했는데, 별도로 인터뷰 일정을 잡을 필요 없이 다음번 국제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 조사대에서 인터뷰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이메일을 받은 터였다.
조사관은 글로벌엔트리는 별도로 인터뷰를 거쳐야한다며 나를 인터뷰 담당관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한 명당 10-15분씩 걸리고 현재 내 앞에 세 명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기다리겠느냐고 물었다.
미국행 비행기 탑승까지 한 시간 정도 남은 상황.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는 “그럼 기다리다 혹 너무 늦어져 포기해야 하면 다시 내게 오면 여권조사 절차를 더 기다리지 않고 마치게 해 주겠다”고 말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글로벌엔트리 인터뷰 줄에 들어서니, 내 앞에 새치기했던 여자가 또 서 있는 게 아닌가.
평온했던 내 마음은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 사람들과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이 중국 여자만 없으면 분명히 여기서 인터뷰를 마칠 수 있을 텐데, 이 여자 때문에 결국 기다리기만 하다 포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와 환승 시간이 같았던 그녀는 그곳을 지나던 승무원에게 탑승구 번호와 비행가 이륙 지연 여부를 물었다. 나도 그녀에 이어 물으니 승무원이 내 비행기는 30분 지연되었다고 했다.
보통은 예정보다 지연되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니 반갑지 않은 소식인데, 그 순간엔 ‘늦어진다’는 말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탑승시간에 늦을까 바쁜 걸음으로 게이트에 도착했는데, 지연은 예상보다 점점 더 길어졌다. 컴퓨터 이상으로 전산이 작동하지 않아 탑승 수속을 밟을 수 없다고 했다.
그곳에서 기다리며 한국에서 다음날 아침을 맞으셨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밤새 우셔서 목소리가 잠기셨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라”고 당부하시는 엄마의 음성은 평온했다. 다행히 기운을 차리신 듯했다.
비행기는 두 시간 가까이 지연된 후 탑승할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와 내가 사는 도시의 불빛 가까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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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