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표정이다. 출근해 키친에서 마주친 중국계 스티븐 말이다. 스타트업들이 많이 입주해 있는 이곳에서 거의 1년 동안 눈인사만 나누다 달포 전 악수하고 친구가 된 그는 소규모 벤처투자를 하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영어실력으로 판단하건데 최소한 대학원 때 유학 와 30여년 지났을 내 또래다.
처음 친구가 된 날 투자사업은 잘 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투자 받은 친구들이 ‘스투핏!’ 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다고 했다. 아무리 열에 하나, 스물에 하나의 성공을 바라고 하는 벤처투자라고 하지만, 해당 스타트업들이 잘해서 매출액 10억 달러의 유니콘 기업으로 화려하게 비상하지는 못할망정,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는 사례가 왕왕 있어 안타깝다는 말일 거다.
중국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친구도 무척 소탈하고 일도 정말 열심히 한다. 가끔 새로운 한 주를 대비해 자료도 조사하고 좋은 글도 읽으려고 주말저녁에 사무실에 가보면, 이 친구가 사무실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에 엉클어진 머리로 눈에 불을 켜고 일하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다. 햄릿에게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였다면 이 친구에게는 ‘투자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문제이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불쑥 트럼프를 책망하는 것이었다. 정말 머리가 나쁜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이러쿵저러쿵! 하는데 나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누구라도 미국이 중국에 이용당하는 것을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 하며 속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도라 도라 도라!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조종사들이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기습 폭격을 마치고 귀환하며 임무 성공을 알린 무선교신 암호이다.
당시 본토에 있던 미국인들이 지금처럼 느꼈을까? 폭탄이 바로 앞에 떨어지는 그런 긴박성은 아니지만 무언가 엄청난 세기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는 벌써 미중 무역전쟁의 실질적인 여파가 곳곳에서 체감되고 있다. 어젯밤 수영장 자쿠지에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눈 50대 초반의 중국계 여성 킨은 중국과의 무역업 및 상용부동산 투자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이 지난 5월 초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고 중국도 그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으로 미국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기로 하면서 촉발된 미중 간의 경제대전으로 양국 간 무역이 크게 위축됨에 따라 수출입 물동량이 현저히 줄어 샌프란시스코나 오클랜드 그리고 산호세 일원의 스토리지 건물 공실률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미국이 대중 특별관세를 매기면 월마트에서 중국산 제품을 구매하는 미국의 서민층들에게 그대로 그 여파가 물품가격에 반영돼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겠냐며 트럼프의 정책이 옳지 않다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해도 국민들이 참고 견딜 줄 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월마트의 신발값이 인상되면 사람들은 새 신발을 사는 대신 더 오래 신으면 되는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 신발공장을 운영하는 외국인 투자가는 결국 중국을 떠나 베트남 같은 이웃나라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니 미국엔 피해가 별로 크지 않은 반면 중국의 입장은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이 여성도 중국계라 그런지 트럼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한다. 그녀는 트럼프의 국경장벽 건설 등 여러 정책이 마음에 들어 그동안 지지했었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해 세계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된 지금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거두겠다고 한다. 트럼프는 세계 모든 나라를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는 싸움꾼일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 그녀에게 “킨, 그건 이전 대통령들이 아무런 조치를 안 취한걸 트럼프가 총대를 멨기 때문이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럴 때 한국은 한국전에서 수만명의 병사가 전사하며 피로 지켜주었고, 한국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시장도 열어주고 경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아온 혈맹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작금의 이런저런 한국의 상황을 태평양 건너에서 바라보면 걱정도 많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미중 양강의 무역전쟁의 소리 없는 그러나 치열한 함포사격의 포성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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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