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역전쟁… 흔들리는 시진핑 위상

2019-05-20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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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저주의 해가 될 것인가’- 춘절(春節- 중국 음력의 1월 1일)을 알리는 요란한 폭죽소리와 함께 많은 중국인들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라고 한다.

9로 끝나는 해마다 변고가 벌어진다. 미신인가. 그보다는 한 세기 중국 현대사가 심어준 강박관념이다. 그 시작은 5.4운동이 일어난 1919년이다. 중국공산당 정권이 출범한 해는 1949년. 텐안먼(天安門)사태가 발생한 해는 1989년이다. 그리고 1999년에는 파룬궁 탄압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타결 전망이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와 함께 이 ‘9로 끝나는 해’의 징크스가 다시 떠올려지고 있다. 2019년은 시진핑에게 어쩌면 ‘극히 잔인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전망이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1년여를 끌어온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4월말, 그러니까 5월 9∼10일 워싱턴 고위급 협상을 앞둔 시점의 분위기였다. 타결은 그러나 막판에 무산됐다.

‘중국의 불공정한 통상과 산업관행을 개선하려면 중국이 법률을 고쳐야 하며 이를 무역 합의에 명문화해야한다’- 미국의 이 요구를 중국 측은 상당부분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조기타결의 낙관론이 팽배했었다. 그런데 막판에 시진핑은 비토를 하고 나선 것이다. 왜 갑작스런 입장변화인가.

“중국공산당 내 보수좌파에서 평당원에 이르기까지, 또 국영기업체 그리고 정부보조금에 기대 생존해가는 산업체에 이르기까지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니케이 아시안 리뷰의 보도다.

미국의 중국 국내 법률 개정요구를 ‘21세기 판 불평등조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할까. 그것이 중국 내의 분위기로 시진핑은 막판에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무엇을 말하나.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종신집권의 길을 연 이후 진시황에 빗대 ‘시황제’로 불릴 정도로. 그 시진핑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말이 아니다. 계속되는 무역전쟁과 함께 시진핑의 판단력, 특히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지를 잘 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국내에서 높아가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미국에 양보를 할 경우 불만은 더 고조되고 그만큼 시진핑의 입지는 더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같은 시각이다.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 더 많은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시진핑은 공중에서 밧줄을 타고 있는 곡예사와 같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관련해 이 신문은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는 무역협상에서 곤경에 처한 시진핑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도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시진핑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도 같은 지적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시진핑 첫 5년 임기동안 베이징의 태도는 한 마디로 ‘초강경일변도’였다.

부패와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탄압이 자행됐다. 민주화 세력만이 아니다. 공산당 내의 다른 목소리에도 철퇴가 가해졌다. 소수민족, 종교탄압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200만 가까운 신장성 자치지역의 회교도 위구르인 강제수용소 행에서 보듯이.

해외정책도 마찬가지다. 남중국해에서, 또 대만해협에서 근육자랑을 하면서 반미 노선을 내걸었다. 게다가 일대일로 팽창정책과 함께 미국주도 국제질서에 정면도전을 해온 것.

2017년, 2018년께였나. 미국에 대대적인 경종이 울려진 게. ‘팬더 해거’(친중파)로 분류되는 전문가들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더 이상 파트너가 아닌 미국이 맞은 최대의 적이다’- 이 같은 중국관이 이제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굳어졌다.

대변화가 일어난 것. 그러나 시진핑은 그 변화를 외면해왔다. 그러다가 기습을 당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시진핑은 여전히 트럼프의 의지, 그리고 미국 내에 팽배한 초당적인 반 중국정서를 오판하고 있다는 비판이 안팎으로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의 비토로 좌절된 미-중 무역협상, 그 과정에서 새삼 제기되고 있는 질문은 중국의 경제모델과 서방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평화적 공존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불공정한 통상과 산업관행을 개선하려면 중국이 법률을 고쳐 명문화해야한다’- 시진핑은 미국의 이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21세기 판 불평등 조약이기 때문인가. 아니, 그보다는 이를 받아들일 경우 공산당 1당 통치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중국경제 특유의 거대한 국가부문(state sector), 정부보조금 지급은 경제가 아니다. 주요 인물, 그룹 등에 이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은 공산당통치, 더 나가 시진핑 1인 독재에 대한 도전을 사전에 막는 정치행위다.” 중국문제전문가 민신 페이의 말이다. 거기다가 중국은 외국과의 상업적 관계를 서방과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

문제는 보조금지급,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거대 국가부문의 중국경제 모델은 작동이 제대로 안 되면서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제도를 살리기 위해 모든 자원에, 공권력을 동원하고 있다. 전 인민의 결사 대미항전까지 외쳐가며.

이와 함께 날로 높아가는 것은 사회적 긴장감이다. 멀리 신장성에서. 티베트에서 그리고 한족 중심의 엘리트집단에서도 해마다 커지고 있는 것은 반란의 싹인 것이다.

2019년은 정녕 시진핑에게 잔인한 해가 되고 말 것인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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