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지적이고 사진은 본능적이다. 그래서인가. 때로는 사진 한 장이 10,000마디의 글보다 더 감동적이다, 동시에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딱 한 점의 흐릿한 불빛만 보인다. 나머지는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 있다. 위성이 바라본 North Korea의 밤풍경이다. 그 남쪽 South Korea의 야간풍경은 화려한 불빛으로 휘황찬란하다. 불빛만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영토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이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은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방장관이 집무실 책상 유리 밑에 깔아 놓고 늘 한반도 문제를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유명해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자신의 SNS에 이 사진을 공유해 더 유명세를 탔다. 머스크는 ‘낮과 밤의 차이’라는 글과 함께 ‘미친 아이디어 : 한 나라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로 반씩 쪼개 70년 뒤 모습을 확인해보자’라는 문구를 올렸다.
밝음(明)과 어두움(暗)이 극명히 대조되는 한반도 야간위성사진. 그 South Korea와 North Korea를 남한과 북한이란 우리말로 표기하지 않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한 국가를 지칭하는 대명사를 넘어 강력한 메타포로도 쓰여 지고 있어서다. South Korea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번영 등의 동의어가 됐다. 반면 North Korea는 억압, 기아, 학살, 수령우상 독재 등 요컨대 반(反)문명으로 흑화(黑化)해 가는 체제, 그 대명사로 쓰여 지고 있다.
‘거대 North Korea’로 변모되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 ‘점차 North Korea를 닮아가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 등 포린 어페어스 등 주요 서방언론들의 표현이 그렇다.
‘이란의 장래 : North Korea 시나리오가 펼쳐질까, 아니면 South Korea의 길로 갈까’- 리얼 클리어 디펜스에 최근 게재된 한 논평의 제목이다. 이란이 지긋지긋한 이슬람 독재체제를 청산하고 문명세계로 나아갈지, 흑암(黑巖) 속에 갇혀 계속 신음하게 될지, South Korea와 North Korea란 단어를 병행해 메타포로 사용한 것이다.
우라늄 농축, 그러니까 핵무장을 놓고 서방세계와 팽팽한 대립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과 영국 항모전단이 중동해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공격채비에 들어갔고…. 여차하면 또 한 차례 중동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면 대대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100여개 도시에서 트럭운전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가담해 빵집, 구두 가게 등도 자진 철시에 들어갔다. 은퇴 노동자, 교사, 간호사, 심지어 공무원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제 정의와 인간 존엄을 요구하면서.
회교 혁명정권의 이란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슬람 공화국으로서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관련해 던져지는 질문으로 이란은 South Korea의 길을 갈지, North Korea의 시나리오를 채택하게 될지 그 갈림길에 있다는 것이 리얼 클리어 디펜스의 진단이다.
이 양 갈래 길에서 투쟁은 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이란의 운명은 물론, 중동전체의 안보체계도 결정될 것이라는 게 뒤따르는 전망이다.
위기는 이중삼중으로 겹쳐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정체성 위기다. 많은 이란 국민은 ‘이슬람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텅 빈 모스크가 그 한 단면이다. 그러면서 수 천 년 역사의 이란의 문화전통과 세속주의에서 정체성을 찾고 있다.
두 번째는 통치의 합헌성 위기다. 회교 혁명정권은 이란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수십 년에 걸친 부패, 압제, 엇나간 공약 등은 회교 공화국 정권의 도덕성, 정치적 권위의 마멸을 불러왔다. 세속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이제 더 이상 소수가 아닌, 메인 스트림의 외침이 됐다.
경제도 위기의 연속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다가 회교 혁명정권의 독점체제의 비능률성이 겹쳐 경제는 말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는 물가, 높은 실업률. 주요 공공서비스 시스템 붕괴. 이 와중에 전문직 종사자들도 생존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겹친 것이 해외정책의 위기다. 국민 대다수는 이웃 국가들은 물론, 유럽, 미국과도 평화적 관계를 희구하고 있다. 회교혁명정권의 호전적 해외정책에 진저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인 젊은 세대의 이슬람 독재체제에 대한 거부감은 더 강하다. 자유, 평등, 보다 밝은 장래에 대한 요구와 함께 1979년 호메이니혁명과 함께 수립된 이슬람 통치체제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불온한(?) 국민의 움직임, 다시 말해 South Korea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란 대중의 몸부림을 회교정권의 최고지도자이자 독재자인 알리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의 군사공격보다도 체제 유지에 더 위협적 요소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내린 처방전은 초강경 억압정책이다. 인터넷 블랙아웃에, 무더기 체포, 심지어 대대적 처형도 마다 않는 North Korea 시나리오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광명과 흑암, 어느 길을 이란은 결국 선택하게 될 것인가’- 관련해 리얼 클리어 디펜스가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그렇다. 어쩐지 마냥 먼 나라의 일로만 들리지 않는다.
6.3 대선이 자유민주주의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킬지, 아니면 괴물독재 출현과 함께 대한민국은 흑화의 심연으로 빠져들지, 체제를 건 사실상의 전쟁으로 보여 하는 말이다.
정말이지 기도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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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