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댐의 구멍을 막아라

2019-05-11 (토) 12:00:00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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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4대강 보 해체를 두고 뜨거운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보는 하천을 가로막아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농업용수나 생활용수를 얻는데 쓰인다. 댐은 훨씬 규모가 커서 높이가 15m 이상이고 수력발전까지도 가능한 인공구조물이다.

‘댐’은 새로운 물그릇을 만드는 반면 ‘보’는 기존 물그릇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수자원의 확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 주변 여가 공간조성 등을 고려해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이 내려지기를 바랄뿐이다.

댐이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비버라는 설치류는 하천이나 늪 같은 서식지로부터 가까운 곳의 나무 밑동을 이빨로 갈아 넘어뜨린 뒤 물가로 끌고 가 쌓고 여기에 나뭇가지를 엮고 진흙을 발라 댐을 만든다. 대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확장 보수공사를 하고 물이 깊은 댐 중간에 섬과 같은 형태의 집을 짓는데 출입구가 물속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다른 동물로부터 안전을 확보한다.

비버 댐은 물의 흐름을 느리게 해 가뭄과 홍수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완전히 막아 강물을 범람시키기도 한다.


네덜란드를 무대로 하는 동화가 생각난다. 27%의 국토가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둑을 막아서 세운 나라이다. 춥디추운 어느 날 한 소년이 늦게 심부름을 갔다 오는 길에 둑의 조그마한 구멍에서 물이 새나오는 것을 보았다. ‘물이 새 들어오면 안 되는데--’ 흙과 돌을 뭉쳐 구멍을 막고 기다려 보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구멍은 다시 새기 시작했다.
아이는 구멍을 두 주먹으로 막고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동네에 가서 알릴 방도가 없었다. 두 주먹을 빼면 금방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자정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동네 사람들과 찾으러 나섰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뚝 밑에 실신해 얼어붙은 아이를 발견하였다. 아이가 온몸으로 둑을 막다가 얼어버린 것이었다.

조그만 구멍이 동네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릴 위험으로부터 이 어린이가 구한 것이었다. ‘한스 브링커’라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스 브링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더불어 이 소년의 이야기도 널리 퍼지면서 소년의 이름은 원래 소설의 주인공 이름인 한스 브링커로 된다.

네덜란드는 1950년 소년의 동상을 만들고 설명도 써놓았다. “이 동상을 우리의 소년, 네덜란드를 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운 것을 상징하는 소년에게 바친다.”

어릴 때부터 희생정신과 용감성을 길러주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부럽다.

우리 콩팥에도 댐 혹은 둑이라고 할 수 있는 막이 있다. 심장에서 매순간 뿜어내는 혈액의 25%를 받아서 피를 걸러내는 신장 안에는 약 100만 개의 사구체가 있다. 사구체는 옛날에 할머니들이 쓰던 바구니 채와 같이 생겼는데 채를 구성하는 골격은 기저막과 혈관들이다.

사구체는 많은 혈액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노폐물은 배설하는 반면 우리 몸에 필요하며 사이즈가 큰 단백질은 사구체를 구성하고 있는 막에서 통과 시키지 않고 혈액 안에 간직한다. 마치 할머니들이 채를 칠 때 고운 것들은 빠져나가고 큰 것들은 골라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구체의 기저막은 단백질을 새나가지 않게 하는 둑처럼 되어있으면서 동시에 전기를 띄고 있어 단백질을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댐 안에 필요한 것들을 간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뇨, 사구체염증, 혈압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이 막이 망가지면서 단백질이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아주 조그만 양의 단백질이라도 소변에 보이면 이것은 사구체의 둑에 구멍이 난 것으로 판단하며 앞으로 댐이 붕괴될 신호탄으로 본다. 시간이 가면서 콩팥이 나빠질 것을 걱정하여 생명보험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신체검사의 한 요소이다.

초기에 사구체의 기저막에 구멍이 나지 않게 원인질병을 잘 조절해야한다. 그러나 이미 단백뇨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그 단백뇨를 줄이기 위해 도움 되는 혈압약을 쓰는 경우가 있다. 자체면역으로 단백뇨를 일으켰던 기저막의 상처가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둑에 난 조그만 구멍이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내 인생의 작은 실수, 좋지 않은 작은 습관과 편견 등이 얼마나 큰 영향으로 다가왔던가를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둑을 허무는 구멍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 사회의 허물어지는 댐을 보고 과연 나는 한스 브링크처럼 용감하게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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