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미꽃

2019-04-12 (금) 조태자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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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상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산 넘고 물 건너 꽃샘추위와 얼고 추운 땅을 지나 봄비가 내리고 봄바람이 불면서 비로소 대지위에 찾아온다. 봄비 내린 대지는 촉촉한 흙 위에 꽃을 피우고 봄바람은 잠자고 있던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깨운다.

한국의 봄은 냉이와 달래, 쑥 등 산나물들이 시장에 나오면서 시작된다. 어릴 적 할머니의 무덤 가까이 가면 어김없이 할미꽃들이 피어있었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연한 회색의 털로 몸을 감싼 할미꽃은 짙은 자주색으로 몸단장을 한 아름답고 고혹적인 꽃이었다. 한국을 떠난 이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더욱 그리워지는 꽃이다.

미국의 4월은 나무에 꽃이 피는 꽃 잔치의 계절이다. 개나리와 목련으로 시작하는 미국의 봄, 잎이 채 나기도 전에 마른 나뭇가지에서 피는 꽃들은 그래서 색이 더욱 선명하고 영롱한 빛을 발한다. 벚꽃 역시 화사하기 그지없다. 봄의 전령사들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되면 모란이 핀다. 황홀하고 매혹적인 꽃, 여왕처럼 우아한 꽃들이 피어 나면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지만 어느 날 모란 꽃잎이 하나둘씩 땅에 떨어지면 나는 아쉽고 쓸쓸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른다. 생명을 잉태하는 조화롭고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봄날은 오고 또한 가고 있다.

<조태자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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