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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산책] 세계문화를 변화시킨 아티스트 비틀스(The Beatles) (13)

2019-04-12 (금)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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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데뷔해 전 세계의 팝 음악계를 호령하던 그들이 1969년 8월쯤 팀이 해체한다는 소문이 떠돌자 전세계 음악팬들은 한마디로 패닉에 빠졌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자신들이 ‘예수’보다 더 유명(?) 하다고 언급했다가 각종 언론으로 부터 호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던 그들이 이젠 팀 해체를 선언하니 팬들은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영원히 지속 될 것 같이 기고만장했던 그들이었기에 ‘비틀스’골수 팬들은 팀해체 반대 운동을 시작했고 음악 애호가들은 그들의 레코드를 사재기 시작하여 한동안 음반이 품귀 현상을 가져 왔었다.

솔로 가수와 달리 보컬 그룹의 활동 생명력은 상당히 짧다. 짧게는 몇개월 길어 보았자 대개 2-3 년이 고작이다. 그 이유는 멤버 사이의 이해관계, 개성, 음악 취향, 그리고 작곡 재능 부족 등등...이다. ‘비틀스’의 경우는 뛰어난 작곡 실력, 새로운 사운드 개발 능력, 남들이 흉내 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음악 감각 등을 소유하고 있어 롱런을 기대 했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67년 8월 27일 매니저이자 정신적인 지주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틀스’의 앞날에 먹구름이 찾아 왔다. 그는 단순히 그룹 밴드 매니저 일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통제했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약물 남용으로 하루 아침에 이 세상을 떠나자 개성이 강한 ‘존 레넌’ 과 ‘폴 맥카트니’ 의 의견 충돌 때 이를 중재할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그의 빈자리의 공백이 너무 커 천하의 ‘비틀스’ 는 선장을 잃고 표류하는 침몰 직전의 배와 같았다.

매니저의 죽음 직후 팀은 미팅을 가져 힘을 모와 활동을 계속 하기로 의견을 일치 한 후 좋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해 10월 ‘Hello Goodbye’를 발표하여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이듬해 여름에 발표한 ‘Hey Jude’ 는 9주간 팝 정상에 올라 ‘비틀스’ 노래 중 가장 크게 성공한 노래로 기록 했었다. 겉으로는 그들의 성공은 끝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왜냐하면 이노래는 ‘폴 맥카트니’가 ‘존’의 아들 ‘Julian’을 위해 작곡 한 노래였기에 그들의 우정은 영원 할 것 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팀 워크는 1969년 3월에 12일 맏형 격인 ‘존 레논’이 일본인 ‘오노 요코’와 결혼하면서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오지랖이 넓은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그룹내 문제에 사사건건 끼어들자 ‘폴 맥카트니’가 이에 문제를 제기 하면서 그들의 우정은 드디어 파탄의 길로 접어들었다. 음악 지식이 없는 ‘오노 요코’의 간섭은 사실 도를 넘었다는 것이 모든 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 이었다. 역대 팝 역사상 천재 작곡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폴 맥카트니’의 자존심을 그녀가 건드린 결과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셈이다. ‘폴’뿐만아니라 모든 그룹 멤버들이 ‘오노 요코’를 싫어했다. 그러나 이 이유만 으로 ‘비틀스’가 해체 되었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

1969년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 ’를 녹음한 후 그룹 활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허나 이 앨범에 삽입된 ‘존 레넌’의 작품 ‘Come Together’와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Something ’,‘Here Comes The Sun’ 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혀 지금까지도 많은 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특이점은 매니저 사후에 이들의 음악은 더욱 다양해 졌다. 단순한 기타와 드럼 위주의 고전적인 기타 밴드에서 벗어나 관현 악기를 사용하기도하고 클래식 음악인 바로크풍의 음악에 접근하기도 했다. 이들의 탁월한 재능이 바야흐로 무럭무럭 익어가는 지점에 도달했으며 또한 이들의 음악 수준이 최고의 정점으로 달려가는 순간에 멈춰 버린 점이 너무나 안타까운 점이다. (계속)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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