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구 저런, 톨레도!”

2019-03-23 (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작게 크게
남가주 뉴포트 비치의 희대의 입시 사기꾼 릭 싱어 일당과 결탁한 학부모들의 볼썽사나운 명문대 입시부정사건으로 미국은 지금 와글와글하다. 거액의 기부금으로 명문대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물론, 하버드 출신 시험귀재의 SAT 대리시험 및 뇌물로 점철된 추악한 입시부정의 여파로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의 부서진 꿈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79년부터 14시즌을 뛰며 4번의 수퍼볼을 차지한 전설적인 명 쿼터백 조 몬타나와 고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등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명사들의 이름이 이 사건과 관련해 회자되고 있는 것은 참 씁쓸하다.

세상이 그렇게 정직하고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허망함이 일순 번졌지만, 한편 수년에 걸친 집요한 수사로 이들을 일망타진한 사법당국의 개가에는 큰 박수를 보낸다. 미국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자정시스템을 갖추고 전진하고 있어 희망이 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로비에서 로칼 신문을 집어든다. 테크기업 호황이 주거부족 사태로 이어지며 불어 닥친 실리콘밸리 재개발 광풍 속에서도 구글의 도시, 마운틴 뷰의 독자건물에서 45년간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로서리 마켓이 문을 닫는단다.

내가 잘 아는 덴마크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좋은 오퍼를 받고 매각됐고 상해 출신인 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한다. 테크기업의 젊은 직원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레스토랑에 가거나 배달음식을 애용하지 식료품을 사서 요리하는 일이 별로 없어 중소 그로서리의 영업에는 진즉 빨간불이 켜졌었다는 소식이다.
“아이구야… 그만 마시고 나가주세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재임한 전 페루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두번째 체포됐다는 소식에 잠시 실소를 짓는다. 72세의 그가 고독을 달래느라 그랬는지 선술집에서 과음을 한 모양이다.

평범한 가정의 근면한 아들이었던 그는 미국에서 간 두 명의 평화봉사단원과의 인연으로 미국에 유학올 수 있었다고 한다.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주립대를 축구 장학생으로 졸업한 뒤 스탠포드 대학원에 진학해 2개의 석사학위와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의지의 인물이다.

페루인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했던 그는 일본계 전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90~2000)의 3연임을 저지하면서 53세에 제 63대 페루 대통령이 되었다. 재임 중 2003년엔 애플의 스티브 잡스 보다 2년 앞서 모교인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축하연설을 했는데 아마도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절정기가 아니었을까.

그는 유년시절에 뼈저리게 겪었던 열악한 페루의 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겠다며 스탠포드 교육학 박사답게 국가 백년지대계에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초중등 학교의 컴퓨터를 범국가 교육 전산망에 접속시키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교사들의 보수를 2배로 인상하는 등의 획기적인 조치로 큰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과에 연동한 차등 급여제에 대한 교사들의 반대 시위가 잇달았고 학생들의 등록률 향상에도 전반적인 문맹률과 평균 학력수준 개선은 미미한 정도에 그쳐 그의 원대한 교육개혁의 이상은 아쉽게도 별 성과 없이 좌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웃음이 나온 이유는, 그가 체포된 곳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를 할 때마다 플레인 베이글에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리느라 들르는 스타벅스의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조용한 동네 선술집이기 때문이다.

펍에서 취해 종업원이 나가달라고 하면 즉각 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나 취한 거 아냐~ ”라며 추태를 부리면 전직 대통령이든 누구든 바로 경찰에 신고돼 체포되고 예외 없이 파출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훈방된다.

재임 시 그는 전용기가 파티비행기로 알려졌을 정도로 애주가였다고 한다. 재임 중 브라질 건축회사에 프로젝트를 맡기고 2,0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7년 기소되고 인터폴에 수배인물로 올라 있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건 역경을 뚫고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정치인들이 작은 영화를 더 누리겠다며 직권 남용이나 뇌물죄에 연루되는 것은 그에게 환호했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일 수밖에 없다.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처럼 국민들로부터 일생동안 오롯이 존경만 받다 홀연히 다음 세상으로 가는 이들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