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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여행하다보면, 시청이나 관청들이 몰려있는 시빅센터 부근에 늘 문화회관이나 공연장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심포니 홀, 오페라 하우스…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는 늘 심포니 홀 같은 공연장이 서 있다. 공연장 짓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왜 오페라 하우스와 심포니 홀은 따로따로 놓여있는 것일까? 베를린을 가봐도, 뉴욕을 가봐도 세계 중심 도시에는 오페라 하우스와 심포니 홀이 각기 따로 놓여있다. 물론 무대 장치가 필요한 오페라 하우스의 경우 그들만의 공연장이 따로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무대가 필요없는 심포니 홀의 경우 오페라 하우스를 빌려써도 그만이다. 그런데 왜?
오페라 하우스와 심포니 홀이 따로 노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베토벤의 심포니를 온갖 잡스러운(?) 작품들이 공연되는 무대에서 함께 공연할 수 있느냐는 거다. 조금 헷갈리는 이유같지만, 아무튼 심포니 홀과 오페라 하우스는 다르다. 심포니 홀에서는 순수한 음악만 연주한다. 그러면 어떤 작품이 순수한 음악일까? 오늘날 심포니 홀에서 연주되는 소위 ‘심포니’라 명명되는 것들은 다름 아닌 베토벤의 계보를 잇고있는 작품들을 말한다. 그러면 모든 심포니가 베토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뜻인가? 그런 뜻이 아니라 소위 근대 문명에 있어서, 인류가 심포니를 음악 장르의 하나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만인 앞에서 당당하게 연주될, 하나의 공연예술로 그 극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시기가 바로 베토벤 때부터였다는 뜻이다. 그러면 베토벤 이전의 심포니는 무엇이 다르길래? 사실 베토벤의 작품 3번 ‘Eroica (영웅)’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베토벤의 작품들도 별 차이가 없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 ‘Eroica’는 당시 유럽지성에 쏟아진 한 줄기 소나기와 같은 작품이었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군더더기 없었고 초월적인 울림의 강렬한 빗줄기… 선율은 마치 사막처럼 황량했지만 그러기에 순수했고 내면에 울려오는 감동… 민중의 정부를 열망했던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그의 정치적 열망을 실현시켜 줄 진정한 영웅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쿠데타로 황제에 오르자 악보를 찢어버렸고, ‘Eroica’는 음악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당시로선 먼 이상이었지만, 소수의 지성들에게는 그 때까지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커다란 감동이었다. 일개 음악으로서,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이 역사를 바꿔놓은 위대한 창작품은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도, 1백 여개의 교향곡을 내놓은 하이든과 같은 대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오직 이제 막 음악의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것도 아직은 대가의 대열에 들어서기에는 한참 먼, 한 청각장애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전혀 뜻밖의 사건이었다. 1803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이듬해 12월 자신의 후원자였던 로브코비츠 공작의 집에서 소규모 악단으로 비공개 시연됐는데 1805년 4월 빈에서 공개 연주회가 열렸을 때는 워낙 파격적인 형태의 작품이라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로브코비츠 공작 집에서 열린 비공개 초연을 다룬 ‘Eroica’가 BBC에 의해 제작, 2003년 TV영화로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이 혁명적인 곡의 역사적인 증인들… 소수의 감상자들과 연주자들이 보인 충격적인 모습과 초연당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 곡의 급진적인 분위기에 대한 반응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youtube에 ‘Eroica’ 라는 제목으로 나와있는데, 영화는 단순히 초연하던 날 하루의 이야기와 ‘Eroica’의 1악장 부터 4악장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 연주회 하나 만으로 어떻게 영화가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점이 ‘Eroica’의 다른 점이었다. 첫 울림부터 여느 음악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소리라고는 볼 수 없지만 어색함 가운데서도 어딘가 솔직한 감동, 집요하게 자기 세계를 그려가는 웅지, 마음의 창을 노크하는 음악의 믿음… 그리고 극적인 힘…
‘Eroica’는 한 작곡가가 선구적인 작품을 내놓았다는 의미에 앞서 베토벤이란 음악가를 세상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영화엔 하이든이 참석하여 매우 놀란 표정으로 ‘음악의 새 역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유명한 코멘트를 날리게 되는데 베토벤 자신도 ‘Eroica’를 자신이 남긴 9개의 교향곡 중 최고로 꼽았다고한다. 나폴레옹을 위해 써졌다가 ‘어느 영웅을 위한’ 교향곡으로 바뀌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무튼 작곡가의 고뇌, 영웅적인 기상 등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고전적인 성향으로 봤을 때 다소 투박하고 파괴적이었지만 ‘Eroica’는 당시만해도 귀족들의 그늘 밑에 놓여 허약하고 부르조아적이기만했던 음악 세계에 혁명 정신을 불어 넣은, 올곧은 반항정신… 낭만주의의 시작이자 순음악 정신의 진정한 승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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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