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와 재봉틀

2019-03-16 (토)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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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문턱을 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접을 때마다 엄마는 서글퍼하셨다. 아흔 고개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팡이를 짚고도 보행이 어려워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아무데나 걸터앉곤 하셨다. 주민센터에 다니며 배우던 장구도 영어도 노래도 그만둔 지 오래였어도, 바느질만큼은 포기하기 어려운가 보았다. 재봉이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 딸 넷의 옷이 모두 엄마의 손끝에서 나오던 기억에 마음이 아렸다. 집안에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멈출 날 없었으니, 재봉틀은 엄마와 평생을 함께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아니었을까. 내가 멀리서 걱정을 할 때면, 바느질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으니 아직은 괜찮다던 엄마였다. 재봉은 집에서도 혼자 할 수 있고 두뇌에도 좋으니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하던 나를, 엄마는 무턱대고 믿고 싶은 눈치였다.

문제는 나이가 드니 자꾸 잊어버린다는 거였다. 밑실이 자주 엉켜 겨우겨우 풀어놓으면 무슨 영문인지 바늘이 멈추고 실이 끊기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눈 감고도 하던 일인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주눅 든 목소리로 기사를 불렀다. 와서 가르쳐주는 데 3분, 다시 해보라고 연습시키고 출장비 3만 원을 받아가길 여러 차례. 엄마는 그게 아깝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을 터였다. 기사를 부르는 게 그날따라 왜 그렇게 싫었는지 엄마는 재봉틀을 들고 수리점까지 가겠다고, 거기서 배워오겠노라고 하셨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어둠이 내린 거리는 을씨년스러워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바깥은 영하 10도라는데 얼마나 매울지. 기사를 부르기만 하면 될 일을, 거기까지 가는 택시요금이 더 비싸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분별력을 잃은 나도 엄마도 오기가 났고, 엄마를 이겨먹으려는 딸이 괘씸했는지 일부러 더 고집을 부리시는 것 같았다. 콜택시를 불렀다.

밥공기 하나도 발발 떨며 들던 엄마가 어기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재봉틀을 통째로 들고 나섰다. 다 필요 없으니 혼자 다녀오겠다는 엄마 뒤를 따라갔다. 바람까지 불어 몸을 파고드는 추위는 지독했고 그럴수록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가건물 창고였다. 손바닥만 한 전기난로 하나로 얼음장 같은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하나뿐인 콘센트에 우리가 가져간 재봉틀 코드를 꽂으니 그나마 켜졌던 난로도 꺼졌다. 설명을 들으며 계속 해보는데도 엄마는 자꾸 실수를 했다. 재봉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따라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은 쉬웠고 숱하게 반복됐다. 엄마는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기도 했지만 추위에 손이 곱아 실도 잘 끼우지 못했다. 나도 발이 얼어 연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야 할 지경인데 엄마는 어떨는지.

엄마는 생의 끝자락에서 재봉틀을 끌어안고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 나이에 이르러 내 삶의 의미라고 여기던 글조차 포기하게 되면 심정이 어떨까. 엄마의 일은 멀지 않은 내 미래의 일이고, 그게 나에게 글쓰기라면 엄마에게는 재봉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때, 울 듯 하면서도 노기 띤 목소리가 얼어붙은 공기를 깨고 날아왔다. 엄마는, 그만 됐으니 설명을 종이에 적어달라고 하셨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등 뒤에서 무섭게 노려보고 있을 딸이 보이는 것 같아, 긴장되고 손이 떨려 못하시겠다는 거였다. 나는 그만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편안하게 집에서 배워도 되는데 추운 곳까지 찾아온 걸 따질 것 같았는지 엄마가 선수를 쳤다. 목소리에 파란 불꽃이 일었다.

“이론적으로는 네 말이 맞을지 몰라도 엄마가 그 정도로 예민해 있을 때는 일단 물러서라. 너 좋은 점이 그거였는데 오늘따라 대체 왜 날 가르치려 드느냐. 예서 한 마디라도 더 하려거든 당장에 너 사는 캐나다로 가거라.”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어쩌자고 내가 그랬을까. 어떠면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편안하게 해드리자고 다짐하고 왔건마는. 판단력도 기억력도 이해력도 모두가 예전 같지 않은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더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이제와 후회하면 뭘 하나. 흐릿해져가는 엄마의 기억에서 나는 그날의 일을 지우고만 싶었다.

“그날, 재봉틀 일은…, 엄마.”

나는 엄마를 불러만 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듣고 있던 전화 목소리가 조용히 흔들렸다.
“넌 다 늙어서도 눈물이 많구나. 내가 그깟 일로 고깝고 서운해 하며 살았으면, 이 나이 되도록 온전한 정신으로 살았겠냐. 한가한 소리 그만하고, 거긴 밤일 테니 어서 자거라.”

때로는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도 사랑이다.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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