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매에 걸려서도

2019-03-15 (금) 조민현 요셉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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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한 달에 한 번씩 너싱홈 미사를 하러 가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갈 때마다 너싱홈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다 모아놓는다. 대부분의 경우 치매노인들이 많다. 그분들과 함께 미사를 하는데 이게 참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미사를 하는데 아무도 따라 하는 이 없으니 마치 나 혼자 하는 원맨쇼 같다.

베드에 누워 계신 분,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 혼자 알아듣지 못할 계속 소리를 내는 분, 몸을 계속 떠시는 할아버지, 미사는 여기서 하는데 정반대를 바라보는 할머니 등등이다. 혹시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시기나 할까 궁금해진다.

그래서 혼자 힘을 내어 나 혼자 독서도 하고 노래도 크게 부르고 내 할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성호를 긋자고 하면 놀랍게도 그들의 손이 같이 움직인다. 물론 제대로 그어지는 성호는 아니지만 어떻게 내말이 들렸는지 손을 들어 성호를 그으려고 한다. 아! 이 사람들이 그래도 내가 미사를 거행하고 잇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마음이 찡해지는 시간이다.

인간성을 다 파괴시킨다는 무서운 병인데도 신앙만은 어떻게 못하는 구나 싶다. 치매에 걸려서도 성호를 따라 긋는다. 평생을 실천한 신앙은 이렇게 드러난다. 그 놓을 수 없는 신앙의 줄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과 생명의 동아줄이다.

<조민현 요셉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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