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아타운’ 시대 열렸다

2019-03-08 (금) 문태기 부국장·OC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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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그로브 한인타운을 관통하는 대로인 가든그로브 블러바드 동, 서쪽 관문에는 타운을 상징하는 2개의 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중에서 동쪽은 1999년, 서쪽은 2001년에 각각 세워졌다.

현재 이 표지석들에 새겨져 있는 타운의 공식 이름은 ‘코리안 비즈니스 디스트릭’(Korean Business District)으로 지난 1999년 시의회에서 승인한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그 당시 한인상공회의소측은 ‘리틀 서울’ 또는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름을 원했지만 가든그로브 시 관계자들이 백인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어 절충안으로 ‘코리안 비즈니스 디스트릭’으로 정했다고 한다. 시작부터 탐탁지 않았던 ‘코리안 비즈니스 디스트릭’이라는 이름은 그 이후 미 주류 사회뿐만 아니라 한인사회 인사들에게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타운에 30-40년 거주해온 올드 타이머들도 표지석의 공식 이름을 모를 정도로 잊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타운 인사들은 가든그로브 브룩허스트 블러바드에 들어선 베트남 커뮤니티 표지석에는 ‘리틀 사이공’이라는 이름 사용을 시에서 허락한 만큼 우리도 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회의적인 한인 인사들은 타운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점점 줄어들고 베트남 계 주민이 늘어나 ‘베트남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름만 ‘코리아타운’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직 한인상공회의소 회장들의 모임인 ‘상우회’(회장 최광진) 회원들은 40년 전 오렌지카운티 한인커뮤니티가 뿌리를 내린 ‘제2의 고향’과도 같은 타운 이름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며 ‘코리아타운’으로 개명하기로 뜻을 같이했다. 이에 발맞추어 OC 한인사회의 40년 숙원 사업이었던 새로운 한인회관이 건립된 것을 계기로 타운 이름 개명 추진에 탄력이 붙으면서 안건이 시의회에 상정되어 지난달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게 됐다.

10여 년 전 백인 시의원들이 가든그로브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던 시절에 ‘코리아타운’으로 개명하려고 했으면 통과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트남 커뮤니티의 정치적 파워를 등에 업고 시의회에 입성한 베트남계 시의원 3명이 한결같이 타운 이름 개명에 지지 의사를 표명해 비교적 쉽게 새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한인타운 이름이 ‘코리아 타운’으로 개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타운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한인들의 대부분은 반기는 분위기이다. LA 코리아타운과 마찬가지로 오렌지카운티에도 드디어 ‘코리아타운’이 생겨 너무나 기쁘다는 반응이다.

타운 한인들은 ‘코리아타운’으로 개명에 앞장서 온 ‘상우회’ 임원들을 만나면 ‘너무나 수고 많았다’라는 말을 건네고 있다. 이들 중에는 새 표지석 디자인에 필요한 기금을 자발적으로 도네이션 한 업주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름이 한인들에게는 상당히 힘이 되고 자부심마저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LA 코리아타운에는 한인 비즈니스가 많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한인은 히스패닉보다 훨씬 적다. 다운타운 LA에 있는 리틀 도쿄도 마찬가지이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일본계는 많지 않고 업주들은 일본인보다는 한인들이 훨씬 많다.

가든그로브 코리아타운에 베트남계가 많이 거주한다고 해서 40년 역사의 한인타운을 그대로 팽개 칠 수는 없다. 아직까지 타운 부동산 소유주의 80%이상이 한인일 뿐만 아니라 한인회, 민주평통, 상공회의소, 노인회, 시민권자 협회, 재향 군인회 등을 비롯해 많은 단체들이 사무실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한인회관이 문을 열면서 타운을 찾아오는 한인들의 발길이 빈번해졌다.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만큼 이곳에 오면 한인커뮤니티의 문화와 음식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타운으로 앞으로 탈바꿈 해나가야 한다. 올해부터 ‘코리아타운’ 시대가 개막됐다.

<문태기 부국장·OC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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