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조와 흑조

2019-03-01 (금) 김영중/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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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은 속도, 해체, 가짜 문화가 21세기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강의했다. 요즘 돌아가는 사회현상을 보면 그 강의 내용이 적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가 시작 된 후 어느새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새해라고는 하나 새롭고 희망적인 소식보다 가짜뉴스, 진실이 왜곡된 거짓이야기들이 무성하여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누구의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 오직 하늘만 알 뿐, 아무도 그 진실을 모른다. 삶에 일부처럼 느껴지는 가짜문화가 강한 시대이다.

오랜만에 새해인사를 나눈 여류문인에게 근래에는 왜 글을 발표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그 분 말씀이 문학과 사랑이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평생 글을 쓰며 그 글에 진실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발표되는 글들을 보면 진실과 괴리가 있다며 삶과 일치하지 않은 언어놀음이 싫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살다보면 기존의 믿음이 깨어지는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것 같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 유포하며 다른 사람의 가치를 깔아뭉개는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거짓 이야기가 끼치는 영향력과 파괴력은 대단한 것이기에 좋았던 관계가 멀어지고 끊어지곤 한다.

요즈음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짜문화를 보면 공명조가 떠오른다. 히말라야 설산에 살았다는 전설 속의 공명조는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이다. 머리가 둘이다보니 생각도 둘이어서 선과 악을 반복하며 때로는 백조가 되고 때로는 흑조가 되어 백조와 흑조 사이를 오고간다.

세상에는 공명조와 같이 몸은 하나인데 흑백을 오가며 머리가 둘인 사람들이 꽤 있다. 악을 행하는 흑조 같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으면 아무리 동여매고 싸매도 아픔이 가라앉지 않아 패닉 상태에 빠지게 한다.

선을 행하는 백조 같은 사람들이 승리하는 것을 보며 산다면 행복하겠으나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이 꼭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선이 악에 패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질투를 느낀 궁정음악관 살리에르는 결국 모차르트를 죽게 하는데 성공하지 않는가,

가짜가 판을 치며 기승을 부리는 이 시대에 가짜정보나 거짓(가짜) 말을 예술작품처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흑조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받는 최고의 형벌은 진실을 이야기 할 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절로 고독한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김영중/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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