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자를 더 좋아하는 대학들

2019-02-22 (금)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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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모교 존스홉킨스대학에 무려 18억 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 대학 기부금으로는 사상 최고액이다.

특히 엄청난 금액과 함께 기부 이유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부 대학들을 제외하면 모든 미국 대학이 입학지원서를 평가할 때 학생들의 학비 지불 능력을 고려한다. 저소득층 및 중간소득층 출신 지원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춰도 입학이 거절되고 그 자리는 더 여유 있는 지갑을 가진 부유층 가정 출신에게 돌아간다. 이런 일은 네브래스카 농부의 아들, 디트로이트 워킹맘의 딸에게 상처를 준다”며 명문 대학들의 입학전형 현실을 꼬집었다.

돈이 없어도 능력이 있다면 명문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이 기부금을 그렇게 사용해 달라는 게 그의 뜻이다. 그는 기부금 사용처를 ‘학부생을 위한 장학금과 기금’으로 지정했다. “미국에서는 실력만 있으면 명문대학 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많은 대학들이 부유층 학생들을 더 선호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전국 주요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가량이 ‘최우선 관심사가 부유층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대학들의 입학설명회도 마찬가지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갈수록 많은 대학들이 부촌을 타겟으로 한 입학설명회를 개최했다.

사립대들은 공립고교보다 사립 고교를 더 많이 방문했으며 주립대들도 홈스테이트에서는 빈촌과 부촌을 비슷하게 방문했지만 타주에서는 부유층 지역을 더 많이 찾았다.

등록금은 갈수록 치솟고 대학들이 부유층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명문대학에는 ‘금수저 들’이 넘쳐난다. 뉴욕타임스의 2017년 보도에 따르면 다트머스, 프린스턴, 예일, 유펜, 브라운 등 5개 아이비리그 대학을 포함한 명문대 38곳을 조사한 결과 소득 상위 1% 출신 학생 비중이 하위 60% 출신학생보다 최대 3배 이상 많았다. 주요 명문대 재학생 4명 중 한명이 부유층 출신인데 반해 소득하위 20% 출신은 고작 0.5%에 불과했다.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대입 레이스 출발선에서부터 많은 장애물을 만나는 것이 현실이다. ‘잭 켄트 쿡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성적이 뛰어난 저소득층 학생 4명 중 1명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서 대입 지원절차를 밟는다. 부모들은 생계에 허덕이고 주변에 엘리트 스쿨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적다 보니 학교나 주변에서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비싼 대입지원서 비용도 부담이다. 수수료 면제를 이용해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일부 대학들은 고교카운슬러(미국에서 고교 카운슬러가 담당하는 평균 학생 수는 500명에 육박한다)가 양식을 작성해 보내도록 하는 등 절차가 간단치 않고 이런 베니핏을 모르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학업성적만이 아닌 다양한 액티비티를 리뷰하는 포괄적 사정방식도 불리하다. 저소득층 학생의 경우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보면 과외활동은 엄두도 못 내고 여름방학 중 무급 인턴십을 하는 것도 어렵다. 이뿐이랴. 많은 수험생들의 봄 방학 루틴인 캠퍼스 투어도 그림의 떡이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대학과 교육 당국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개선책을 마련한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다.

“미국은 각자의 재정 상황이 아니라 성취에 따라 보상받을 때 최고가 된다. 실력이 충분해도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이며 이는 아메리칸 드림 정신에도 위배 된다.” 대학들의 합격자 발표 시즌이 다가오는 가운데 블룸버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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