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걷고 있다는 것

2019-02-14 (목) 김명수 / 수필가
작게 크게
명륜동 집과 골목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성균관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어느 여름날 내 또래 아이들이 모두 아프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면 땀을 흠뻑 흘린 후 열이 떨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병원에서 일할 때 그곳 의사와 이 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혹시 오래된 나무가 있는 숲속이나 공원에 간 적이 있었나요?”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성균관대학에서 뛰어다니다 고목 뿌리 옆에 앉아 쉬고 있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된 나무에 서식하는 틱(Tick)이라는 진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라임(Lyme)병이라고 하지요. 물리면 열이 나고 심하면 근육이 마비되기도 합니다. 이건 단지 제 추측일 뿐입니다.”

혼자서만 방안에 누워 있었다. 봄이 오는지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 방안을 비추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는 나는 비참하게 느껴졌다. 감은 눈 속으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나타났다. 내 온몸 전체가 전율에 떨며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넘치고 있었다. 얼마 후 눈을 떠보니 나는 실제로 걷고 있었다. “하나님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삶이 너무 피곤해서 일까?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가 있다. 내 자신이 미워지고 삶이 싫어진다. 그때 문득 내 다리와 종아리가 눈에 들어온다. 감은 눈 속에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짜릿하게 전해지던 행복감, 그렇게 전율을 느끼며 행복했던 느낌을 왜 다른 데서 찾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가장 원하던 꿈이 실제로 이루어졌는데.

<김명수 /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