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부터 스페인인들이 즐겨 먹던 전통 꿀과자 플로레스 사르텐. <사진=천운영 작가 제공>
스페인 전통 꿀과자 플로레스 사르텐의 또다른 종류. <사진=천운영 작가 제공>
‘돈키호테’에 나온 잔칫집 풍경. 축제의상을 입은 농부들이 풍악을 울리고, 전문 무희들이 꽃춤과 칼춤을 추며 흥을 돋우고, 오십여 명의 전문요리사가 동원되어 군부대를 먹일만한 양의 요리를 한다. 느릅나무 꼬챙이에 꿰어지는 송아지, 양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끓고 있는 가마솥, 거기 추가될 산토끼며 암탉 등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주정강화와인이 가득 든 가죽부대, 탈곡장의 밀가루더미처럼 널려 있는 흰 빵, 담장을 이룬 치즈덩어리. 가히 부자 가마초의 결혼식답다. 이중에서 산초의 눈을 사로잡은 바로 그것은 밀가루 반죽을 튀기는 커다란 기름 솥 두 개다. 기름에 튀긴 다음 커다란 삽을 이용해 옆에 준비된 꿀 냄비 속으로 던지는 모습이라니. 중세시대부터 먹던 스페인 전통 꿀과자, 플로레스 사르텐(flores de sarten)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직역하자면 쇠 꽃 혹은 튀긴 꽃. 꽃모양 쇠틀에 걸쭉한 밀가루반죽을 묻혀 튀긴 다음 꿀이나 설탕을 입혀 먹는다. 일단 활짝 핀 꽃잎 모양에 가슴이 설레고, 튀김과자의 바삭한 식감과 꿀물의 달콤함이 조화로운, 그야말로 눈과 귀와 입이 동시에 화사해지는 튀김과자다. 틀을 사용하지 않고 밀가루 반죽 그대로 튀겨내는 것은 프루타스 사르텐(Flutas de sarten). 튀긴 과일이라는 이름. 어쨌거나 전자가 후식계의 모란꽃이라면 후자는 후식계의 망고스틴이다. 그런데 이 튀김과자 어쩐지 낯이 익다. 우리의 전통과자 유과 약과 매잡과 유밀과랑 모양도 맛도 참 많이 닮았다.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인지, 인간들 먹고 즐기고 생각해내는 요리법이란 게 고만고만한 것인지, 어쨌거나 달콤한 튀김과자.
지금이야 모양도 곱고 알록달록 색도 입힌 유과 약과를 너무나 흔하게 먹지만, 내 어릴 적에는 제사나 명절 때나 맛볼 수 있던 고급 과자로 여겨졌다. 말린 유과반죽을 튀길 때 화사하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튀김 솥 옆에 바싹 붙어 앉아 하나씩 훔쳐 먹으면 조청 없이도 뜨뜻하니 고소하니 감질나니 참으로 맛있었더랬다. 엄마에게 할머니 유과가 그립다 말했더니, 엄마 짐짓 으스대며 대답하기를, 엄마 유과는 별거 아냐 우리 할머니 유과가 진짜 유과지, 하신다. 이건 뭐 엄마랑 마주 앉아 제 할머니 대결이라니, 내 할머니면 자기 엄마면서, 나도 할머니 있다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당신 할머니 유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들어나 봅시다요.
엄마가 만든 거랑 비교도 안 되지. 담백하니 고소하니. 일단 찹쌀을 물에 오래 불려. 오래 놔두면 냄새도 나고 끈적하니 그래. 말하자면 삭히는 거지. 그걸 빻아 가루를 내서 찐 다음에 절구에 막 치대. 그럼 끈적끈적하니 야들야들하니 떡처럼 되거든. 거기다 밀가루 좀 넣고 납작하게 밀어. 삼각형도 만들고 사각형도 만들고 손가락 모양도 만들고 아주 이쁘게 만들지. 이걸 제대로 바싹 말리는 게 중요해. 잘 안 마르면 잘 부풀지도 않고 딱딱하니 맛이 없거든. 이걸 숯불에 굽는다. 요즘에야 기름이 흔하다만 옛날엔 기름이 얼마나 귀해. 그러니 굽지. 튀길 줄이나 알간? 숯불 화로에 석쇠 놓고 굽는 거야. 콩기름 솔솔 발라, 숟가락으로 살살 눌러가면서, 타지 않게 노릇노릇. 그럼 느끼한 맛이 없이 아주 담백하지. 거기에 조청 발라 옷을 입히는데, 우리 할머니는 쌀 튀기가 아니라 매화를 입혔단다. 도정하지 않은 벼를 뜨거운 모래에 넣고 볶으면, 벼가 빵빵 터지면서 꽃모양처럼 아주 이쁘게 벌어지는데 그걸 매화라고 그래. 빻아서 쓰기도 하고 그대로 쓰기도 하고, 남은 껍질은 일일이 다 골라내서 얼마나 꼼꼼히 예쁘게 만드시는지. 그걸 매화 입혔다고 매화과라고 했어.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맛있어.
추억이 엄마 얼굴에 꽃을 피웠다. 방그레 입맛 다시는 매화과. 숯불에 구워 매화 입힌 유과 승. 엄마 할머니 승. 하지만 그 맛을 본 적 없는 나는 아무래도 내 할머니 유과가 최고. 이름이 뭐든 어디서 튀기든, 기름에 튀겨 꿀물에 퐁당 빠뜨린, 어쨌거나 튀김 꿀 과자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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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