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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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거나 윙크하며 찰칵 “딱 나처럼 나왔네”

2019-01-16 (수) 12:00:00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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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러 배경 증명사진 찍어 봤니?

웃거나 윙크하며 찰칵 “딱 나처럼 나왔네”

임미선씨가 검은색 망사천이 드리워진 공간 뒤에서 베이지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있다.

웃거나 윙크하며 찰칵 “딱 나처럼 나왔네”

“회색 배경은 이제 그만”. 다양한 배경색을 바탕으로 보정을 최소화하고 나만의 표정을 살린 증명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현하다 제공>


“딱 너처럼 나왔네.”

3일 오후 4시 서울 반포동 한 상가에 있는 한 사진관에서 임미선(55)씨가 딸 이지연(28)씨의 증명사진을 함께 골랐다. 사진에는 오렌지 색 글씨가 포인트로 들어간 남색 니트를 입은 이씨가 해맑게 웃고 있다. 밝고 선했다. 사진 배경색으로 선연한 오렌지를 골랐다. 보정으로 팔자주름을 옅게 했고, 얼굴도 대칭으로 맞췄다. 눈 밑 점과 덧니는 그대로 뒀다. 선한 눈매와 입가가 선명해졌다. 간단한 보정을 거쳐 출력된 사진엔 절로 청춘을 떠오르게 하는 환한 스물 여덟의 지연씨가 있었다.

임씨도 이날 소장용 증명사진을 찍었다. 매년 가족사진은 찍지만 증명사진 촬영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가 찍었던 증명사진은 얼굴이 부어 보이거나 나이가 더 들어 보여 ‘나 같지 않았다’고 했다. 정면이 아닌 사선으로 찍었다. 흰색 대신 에메랄드에 가까운 푸른색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별다른 보정도 하지 않았다. 결과는 달랐다. 임씨는 이날 딸에게 “정말 엄마 같아?”라고 재차 물었다. 따뜻한 바다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50대 여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만의 색 담은 증명사진

흰색 배경에 굳은 표정 일색이었던 그간의 증명사진은 사진 속 인물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다. 증명되지 못한 사진은 지갑 속에 꽁꽁 감춰두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속 사진은 그저 형식에 불과했다. 취업 이력서에 쓰이는 증명사진은 과한 포토샵으로 실제와 괴리만 키웠다. 이제 증명사진이 달라졌다. 휘황찬란한 배경색에 개성 만점의 표정과 포즈는 단박에 사진 속 인물을 증명한다.

증명사진에 대한 인식을 180도로 전환시킨 곳 중 하나가 사진관 ‘시현하다’다. 이곳은 처음으로 증명사진 배경을 흰색이 아닌 다양한 색을 넣은 ‘컬러 증명사진’의 원조다. 주민등록증에도 배경색을 써도 된다. 시현하다 대표인 김시현 사진가는 “3.5X4.5㎝의 정해진 틀 안에서 인물 이외에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는 것이 배경색이었다”며 “색은 인물을 은유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다”고 배경색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이곳에서 사진 찍기 전에 자신과 어울리는 혹은 좋아하는 색을 고를 수 있다.

사랑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으면 분홍색 등 파스텔 색상을, 성숙한 분위기는 자주색이나 청록색을, 통통 튀고 싶다면 노란색이나 주황색을, 도회적이고 이지적이라면 회색 등을 선택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따뜻한 베이지색을 골랐던 임미선씨도 푸른색으로 배경을 바꾸니 훨씬 생기 있어 보이고 입체감이 느껴졌다. 샛노란 배경을 선택한 황수진(29)씨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노란색을 선택했다”며 “이번에 찍은 사진이 ‘가장 나답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진 속 표정도 저마다의 색을 띤다. 살짝 찡그리기도 하고 수줍은 듯 웃기도 한다.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기도 하고 입을 앙 다물기도 했다. 심지어 윙크도 한다. 무표정하게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증, 여권용 증명사진들도 달라졌다. 눈빛과 고유의 표정을 잡아낸 덕분이다. 기존에 사진관에서는 목적에 맞춰 빠르고 정확하고 정직하게 찍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적이다. 김 대표는 “사진 찍으러 온 사람의 매력이 극대화하는 순간을 포착해 찍는다”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을 열고, 자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진관 내부를 안락하게 꾸몄다. 손뜨개질로 만든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거울과 액자, 램프, 화병 등의 소품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다음달에는 아예 도곡동의 한 주택을 개조해 사진관을 옮길 계획이다. 촬영부터 사진 선택, 출력에 이르기까지 약 30분간 1대1로 고객을 대한다. 김 대표는 “포토샵을 과하게 한다거나 외모가 너무 이상하게 나와 증명사진을 찍다가 받는 상처가 많다”며 “고객의 장점을 살리면 굳이 포토샵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예쁘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시현했다’, ‘영정사진 찍었다’는 후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 증명사진 촬영비(5X7㎝ 크라프트 액자, 3.5X4.5㎝ 9매 기준 10만원)보다 5배 가까이 비싼 데도 이미 다음달 예약까지 모두 마감됐다.

현재의 나를 기록한다


대학생 노다은(21)씨도 최근 사진관에서 소장용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는 “매일 보는 내 얼굴인데도 정작 사진으로 보면 느낌이 다르다”며 “매년 달라지는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증명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증명사진을 주고 받으면서부터 매년 찍고 있다 했다. 그는 얼굴 비대칭을 수정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포토샵을 하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직접 찍지 그러냐는 질문에 그는 “셀카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이 어떤지는 잘 나오지 않는다”며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찍는 것보다 사진가가 찍어주는 내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더 실제에 가깝다”고 말했다.

노씨처럼 최근에는 매해 다른 자신의 모습을 기념하려고 증명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아졌다. 김시현 대표는 “과거에는 결혼, 돌, 환갑 등 기념일에 맞춰 찍었지만 최근에는 현재의 나를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같은 크기와 자세로 찍는 증명사진은 매해 얼굴 표정이나 느낌만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의 변화를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머리를 자르거나, 심정에 변화가 있는 날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려고 찍는 이들도 많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기록하기 위해서 찍기도 한다. 보정기술이 날로 발전했지만 과한 보정을 하지 않는 이유다. 피부색이나 점, 보조개, 덧니 등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흉터나 장애마저도 그대로 남긴다. 의안을 하거나 얼굴에 심한 화상 자국이 있는 이들은 평소 사진관을 가기 꺼려했지만 자신만이 가진 표정이나 장점을 부각해주는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은 용기를 내 찾는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웃거나 윙크하며 찰칵 “딱 나처럼 나왔네”

사진사 없이 사진관에 설치된 카메라 앞에서 고객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손에 쥔 리모컨 스위치를 이용해 자신이 원할 때 셔터를 누를 수 있다. <스튜디오꽃일다 제공>


흑백 자화상 사진도 인기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려는 이들이 늘면서 사진사 없이 스스로 촬영하는 자화상 사진도 인기다. 다른 사람이 찍어주는 것이 불편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다. 사진사가 미리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자유자재로 포즈를 취하고, 모니터를 보면서 자신이 원할 때 리모컨 스위치로 셔터를 누른다. 휴대폰으로 찍는 셀카와는 결이 다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마음껏 개성을 드러내는 무대가 마련된다. 익살스런 표정 등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자유롭게 나타난다. 자신의 뒷모습을 찍기도 한다.

허성범 스튜디오 꽃일다 대표는 “배우, 모델 등은 사진가가 찍어주는 게 편하지만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별로 없는 대중들은 남이 찍어준다고 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며 “스스로 찍으면 오히려 다양한 표정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연출된다”고 설명했다. 자화상 사진은 대부분 흑백이다. 배경 없는 흑백사진은 오롯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인물에 더 집중이 잘돼서다. 허 대표는 “사진을 찍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얼굴이 어느 쪽이 더 잘 나오는지, 어디가 개성이 있는지 스스로 잘 안다”며 “전문가와의 상담과 기술을 이용해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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