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행 보고서

2019-01-12 (토)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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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 함께 배낭여행을 하자는 아내의 제안이 저녁식탁에서 화제로 올려졌을 때만 해도, 그 여행이 실현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다만 그런 계획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오래 전 어느 작은 레스토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젊은 날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이동수단은 물론 숙박까지의 모든 여행일정을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모로코의 마라케시였다. 눈을 뜨면 온 세상이 붉은 빛이라는 낯선 땅, 미지의 세상에 발을 디뎌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영화 ‘인디애너 존스’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장면 속에 마라케시가 있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우리가 탄 모로코행 비행기는 이런 저런 이유로 출발이 지연되었다. 물론 안내방송도 없었으며 두 시간여가 지난 후 승무원으로 부터 첫 비행기 탑승 기념증서와 작은 선물을 받고서야 우리가 처음 비행하는 항공기의 승객이 되었음을 알았다. 승무원이 건넨 빵은 굳어 있었고 커피도 식어 있었으나 붉은 도시에 대한 기대나 설렘은 막지 못했다.
여덟 시간 남짓의 비행 끝에 모로코에 도착했으나 활주로에서 입국장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도, 불친절한 입국수속도, 여행의 과정일 뿐이었다. 오히려 이런 강화된 입국절차가 이슬람 국가에 처음 발을 내딛는 우리에게는 최근 빈발하는 IS테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자국민인 듯 보이는 이들에게는 여권만으로는 부족해서 비행기 탑승권이나 여행 증명서까지 요구하며 까다롭게 하는 것을 보며 오래전 내 조국에서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갈 때 긴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내 마라케시 공항 밖으로 나왔으나 시간은 이미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가 여행 전 숙지한 예비지식에는 택시의 바가지요금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맨 앞장에 나와 있어서 주눅 든 마음으로 택시 운전사와 가격을 흥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는 여행이 끝났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이 곤란한 경우를 겪었을 때라고 해도, 막상 마주한 현실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이들에 둘러싸여 눈빛과 몸짓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황스러웠으나 두 아이들이 나서서 흥정한 끝에 우리는 적당한 가격에 택시에 탈 수 있었다.

모로코 전통가옥인 리아드(Riad)를 경험해 보자고 첫 숙박지로 정했으니 주택가 한복판 어디쯤에 숙소가 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었지만, 택시는 도심의 불빛이 점점 멀어져 가는 작은 골목 입구에 우리를 던지듯 내려놓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아시안 가족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이들이 가리키는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순간, 어디에로도 닿지 않는 작은 미로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어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그 길에는 닫힌 문만이 있었고, 문을 열지 않는 한 문은 다만 벽일 뿐이었다. 온통 벽은 벽으로 이어져 길을 만들고, 그 길이 끝나는 막다른 길에서 몇 번을 돌아 나와야 했다. 가로등인들 제대로 갖추어 졌을 리 없었으므로 가장 밝은 빛이 달빛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그런 벽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우리가 끄는 캐리어 소리를 듣고 마중 나온 리아드의 주인이었다. 주인을 따라 그 벽 속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밤에 본 붉은 도시의 낯설음은 아침 햇살 아래 친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밤에 헤매던 길 위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공을 차고 놀고, 남루하지만 작은 좌판에서 파는 음식도 눈에 들어왔다. 무턱대고 시도하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우리는 맛을 기행하는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를 따라 그 도시의 음식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시식을 함으로써 그들의 삶과 역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빵을 굽는 공동 화덕을 보고, 그 화덕에서 구워낸 빵을 시식하고, 올리브를 종류별로 맛보고, 그들이 마시는 차를 마시며 후식을 즐겼다.

가이드를 따라 ‘제마 엘 프나’ 광장의 한가운데를 질러가면 광장 안의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불빛조차 새어 나가지 못하고 갇힌 그 광장 안에서 빛이 모이고 소리가 모여서 탄성이 되고 환호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한 가운데에서 그들이 즐겨 먹는 수프를 맛 볼 때였다. 열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소년이 우리가 앉은 식탁으로 와서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열심히 수프에 대한 설명을 하였으나 우리의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 향해 있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아이가 있음을 안 가이드에게 소년은 남겨진 수프를 먹어도 되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익숙한 표정으로 남겨진 수프를 아이 앞으로 밀어 주었고 그 아이는 인사도 없이 수프를 먹었다.

일행 중 독일 여인이 자신이 채 먹지 않았던 수프를 아이에게 건넸으나 익숙함이 고마움을 앞선 듯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소년은 광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아이를 품은 광장은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북적거렸다.

가이드가 말을 이었다. “우리의 신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정 이후 남은 음식은 저 소년처럼 필요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줍니다.” 광장으로 걸어 들어간 소년과 가이드가 말하는 그네들의 신이 있는 나라, 나는 그 광장에 서있다.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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