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달음

2019-01-04 (금) 박연실 / 풀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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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러해 전부터 밤새 몇 번씩 깨어 뒤척이지만 젊은 시절의 치열했던 시간의 보상이려니 하고 그 시간을 즐긴다.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앞날보다는 지나온 시간을 추억할 것이 훨씬 많다.

30여년전 파리의 가난한 유학생 시절, 길가의 아파트도 모두 뮤지엄 같이 보이는 좋은 동네의 다락방에 산 적이 있었다. 하늘 가까이 세모난 지붕 아래 창문을 열면 에펠탑이 보이고, 지나는 사람조차 모두 영화배우처럼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실의 다락방은 과거 하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방으로 매트리스 하나와 책상을 놓으면 꽉 찰 정도로 협소하고, 복도 끝의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을 써야했고, 엘리베이터는 범죄영화에 나올 듯 후미진 곳에 있는 짐칸 전용을 사용했다. 그나마 자주 고장이 나서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108 계단이라 우리는 종종 백팔번뇌를 털어버리고 오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느 비오는 겨울날, 우연히 창밖으로 앞집이 들여다보였다. 따스한 노란 불빛 아래 식탁이 차려져있고, 부부인지 연인인지 노인 커플이 멋진 옷을 차려입고 월츠인 듯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때 그 순간에는 그들의 풍요와 여유가 너무나 부러웠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오늘 아침에 문득 드는 생각은 만약 그들이 그때 나를 보았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멀리 동양에서 유학 온 젊은이의 용기와 청춘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내일보다 젊은 오늘이니 또 박차고 일어나야겠다.

<박연실 / 풀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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