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갈 길 멀지만 희망 있음에

2018-12-28 (금) 김종하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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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은 2018년을 되돌아본다. 세월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듯 쏜살같이 지나온 느낌인데, 매년 연말 발표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곱씹으며 반추해보니 지난 1년도 어김없이 많은 굴곡과 갈래를 넘어 달려왔음을 깨닫는다.

한국의 교수신문이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올해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고 한다. 논어의 태백편에 나오는 문구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란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스승의 가르침인 ‘인(仁)’의 실현에 대해 설명하면서 “선비의 소임은 무겁고 가야할 길은 멀다”고 한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임중도원’이 작금의 한국의 정치와 경제 등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으나, ‘이뤄야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게’ 느껴진다는 진단은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이곳 한인사회와 미국사회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올해 사회부 데스크를 거쳐간 수많은 뉴스들을 돌아보니 한인사회에서 대형 사건사고는 예년에 비해 줄었지만 커뮤니티를 뒤흔든 이슈들은 유난히 두드러진 한 해였다. 방글라데시 주민의회 분리 추진 이슈가 그랬고, 또 한인타운 노숙자 임시 셸터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첨예한 논란과 지난한 갈등 해결 노력의 과정을 거치며 일단락됐지만, 한인사회의 결집력을 확인하는 성과와 함께 이같은 문제가 닥치기 전에 정치력을 키우고 주변의 커뮤니티들과도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해 갈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도 일깨웠다.

올해 한인사회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윌셔사립초등학교 폐교 사태는 더욱 많은 풀어야 할 매듭과 과제를 남겼다. 한때 한인사회 유일의 정규 사립학교로 2세들의 뿌리교육을 표방하며 잘 나가던 이 학교의 갑작스런 폐교 소식은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회의 부실 운영상을 드러내면서 한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학원의 주말 한글학교들은 여전히 잘 운영되면서 한인 자녀들의 모국어 습득과 정체성 교육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립초등학교 운영의 부실 책임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사회는 책임을 질 것은 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서 폐교된 학교의 시설이 한인 차세대를 위한 뿌리교육 시설로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인사회의 엄중한 요구임을 깨닫고 이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한인사회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현재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갈등은 이민자 문제일 것이다. 취임 후 일련의 초강경 이민 정책들을 강행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대선 공약’이었던 ‘국경장벽’ 건설 요구를 굽히지 않으면서 연방 정부 셧다운 사태까지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 혜택 수혜 이민자에 대한 영주권 제한이나 합법 이민 축소 추진 등의 반 이민 정책은 한인들에게도 직접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2년 후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미리부터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재선 전략’이라는 분석이지만, 그 여파로 이민자들과 이민사회가 겪는 고통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은 새해에도 별반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시도한 ‘국경 밀입국 이민자 가족 분리 조치’는 그야말로 최악의 정책이었다는 게 주류사회 이민 활동가들의 지적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격리돼 있는데다, 최근 국경 지역에 구금돼 있던 이민자 아동이 건강상 문제로 2명이나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같은 정책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불법 이민 문제는 가장 ‘양극화’된 이슈들 가운데 하나다. 불법 이민자 유입이 상당수의 미국인들에게 큰 ‘문제’로 다가가고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국경에서의 이민자 문제가 마치 미국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처럼 부풀려 호도하는 것은 양극화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희망’이 보인다는 전망도 많다. 미 시민자유연맹(ACLU)의 이민자 권익보호 담당 부국장인 리 겔런트는 엊그제 LA타임스 기고를 통해 ‘사법부의 힘’과 ‘피플’에서 희망을 본다고 썼다. 미국 법 체계의 ‘견제력’과 ‘민심’은 살아 있다는 통찰이다. 새해에는 한인사회에서도 시스템과 풀뿌리의 힘이 더욱 결집돼 희망이 살아나길 기대한다.

<김종하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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