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여행도 추억이 되길

2018-12-27 (목) 최은영 / 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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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이 끼어 있는 연휴에 구하기 힘든 타호에 산장을 빌렸다면서 갑자기 주말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금요일에 출발하니 좀 늦어져서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서둘러 저녁을 챙겨먹고 11시가 넘어 2층 침실에 올라갔더니 베개에 소복하게 쌓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다른 베개를 들어 올렸지만 마찬가지, 이불을 들춰보니 세탁을 하지 않은 듯 머리카락이 잔뜩 묻어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넘었는데,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아침까지 연락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숙박공유업체에 전화해서 사정 설명을 하는 데만 몇십분이 흐르고, 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한껏 들떴던 여행 기분은 이미 다 사라졌고, 다시 짐을 싣고 3시간 반을 달려 새벽 5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위해 준비한 음식과 짐을 풀자마자 다시 싸들고 온 것에 신경질이 났고, 밤새 운전을 한 남편에게 미안했고 차에서 잠을 잔 아이도 안쓰러웠다.

다들 좋다고 하는 업체를 믿고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보고 심사숙고해 예약했는데도 생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행히 리포트하면 보상해주는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망쳐버린 여행과 엉망이 되어버린 주말, 나의 이 속상함은 어찌할 것인가. 그냥 운이 좀 나빴을 뿐이라고,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다고 넘겨버려야 하는 것인지 지금도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최은영 / 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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